[미디어]“넷플릭스와 경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공적 소유” 스트리밍 시대 공영 방송의 역할 변화
지난 2021년 시작된 영국의 공적 방송 서비스 채널4의 민영화 작업 본격화. 영국 정부 5월 상세 계획 밝힌 뒤 2023년 마무리한다는 계획. 매각 대금은 1조 5,000억 원 대로 넷플릭스도 인수 가능성. 영국 정부는 "공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오히려 민영화가 필요"
영국 공적 방송 서비스 (공영방송) 중 하나인 채널4(Channel4)가 민영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채널4의 민영화가 2023년 봄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영화 시기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민영화는 채널 매각을 의미하는데 현지 미디어들은 매각 가격을 10억 파운드(1조 5,280억 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채널4 민영화는 지난해 처음 제기됐으며 업계 의견 수렴 등의 작업 진행해왔습니다.
공영 비영리법인(publicly owned not-for-profit corporation)이 소유하고 있는 채널4는 한국의 MBC와 지배 구조(완전 같지는 않지만)가 유사합니다. 지난 1982년 런칭했고 지상파 채널과 음악 채널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적 자금은 투자되지 않고 90% 이상 광고 상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공적 서비스 방송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독립 외주 제작사들로부터 위탁 생산됩니다. 광고 매출은 공영방송 서비스 승인조건(public service remit)에 의해 다양한 오디언스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모두 쓰입니다. 채널4는 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런던 외 리즈, 브리스톨, 글래스고우에 창작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2023년 봄 채널4 매각 완료 가능성]
미국 미디어 데드라인(Deadline)은 채널4 CEO 알렉스 마혼(Alex Mahon)이 4월 4일(영국 시간)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오늘 오후 정부로부터 지난해 제기된 민영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채널4민영화 작업은 2021년 전 영국 문화 정책 장관(UK culture secretary) 존 위팅데일(John Whittingdale)이 처음 제기했으며 영국 디지털 문화 미디어&디지털(DSMS, 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 장관인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이 채택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채널4의 민영화 파장1: 공영 소유 민영 방송, 역사 속으로]
그러나 채널4 민영화가 영국 방송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큽니다. 공영이 소유하고 민영 재원으로 운영되는 형태의 공영 방송(privately-owned broadcaster)’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채널4의 소유 구조 변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EU시장 장악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연간 10~20조 원을 콘텐츠에 투자하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은 가장 많은 유럽 콘텐츠의 수요 플랫폼이지만 동시에 유럽 오디언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도 합니다.
FT에 따르면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매년 편성하는 유럽 제작 드라마, 영화는 2019년 40편 미만에서 2021년 1분기 80편까지 늘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재투자가 사실상 어려운 공적 소유 구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채널4는 광고와 디지털 콘텐츠 판매를 통해 올리는 수익은 프로그램에 다시 쓰이지만 주주 배당 등은 이뤄지지 않는 독특한 재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딘 도르스 영국 문화부 장관은 4월 4일 채널4의 민영화와 관련해 여러 건의 트윗을 올렸습니다.
도르스 장관은 “나는 채널4가 지금과 같이 영국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치하길 바라지만 현재 정부 소유 지배 구조는 넷플릭스 등 메이저 스트리밍 서비스와 경쟁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소유 구조 변화는 채널4가 공공 서비스 방송(a public service broadcaster)으로 오랫동안 남는 자유와 툴을 제공할 것이며 나는 이 작업을 백서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 “채널4 매각 수익은 영국 독립 콘텐츠 사업자와 크리에이티브 경제와 기술에 투입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채널4 매각 수익을 영국 창조 경제, 독립 제작사에 투자하는 ‘창조 배당금(creative dividend)’의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채널4의 민영화 파장2: 콘텐츠 저작권 생태계 대변혁]
채널4의 민영화 작업은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콘텐츠 제작 업계(특히, 채널4와 계약 관계에 있는 독립 제작사)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채널4는 전체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사로부터 제공받는 ‘유통-방송 모델(publisher-broadcaster model)’을 채택하고 있습니다.이 모델은 프로덕션들이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가지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매각 가능성을 높이고 인수 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채널4가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을 허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채널4와 현재 계약하고 있는 독립 제작사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채널4는 승인 조건에 따라 일정 비율 이상의 콘텐츠를 런던 이외의 지역에서 제작하도록 되어 있는 민영화는 이 구조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채널4 인수에 관심을 가진 기업들은 영국 ITV, 스카이(SKY 컴캐스트), 디스커버리(Discovery), 파라마운트(Paramount) 등 해외 미디어 사업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채널4가 다양성과 젊은 세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감안하면 애플(Apple)이나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도 인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버라이어티는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채널4 대변인은 공식 답변에서 “민영화에 대한 공개 의견수렴(public consultation)에서 6만 건이 접수된 가운데 영국 정부의 발표는 실망스럽고 그동안 제기된 중대한 공공 이익 축소 우려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채널4의 매각과 관련한 세부 내용은 오는 5월 영국 여왕의 발언을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정부는 민영화 이후 채널4도 공적 서비스 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er)로 유지할 방침입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채널4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독특한 브랜드를 가진 훌륭한 사업자다”며 “소유권 변경은 오히려 이 회사의 혁신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영국 크리에이티브 산업에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민영 소유 공적 방송 서비스라는 개념도 영국의 독특한 컨셉트입니다. 현재 민영이 소유한 PSB인 ITV와 같은 방식입니다.
[민영화 이후 ‘공적 방송 의무’ 유지 여부 중요]
그러나 민영화 이후에는 일정 수준의 역할 조정은 불가피합니다. 승인 조건이나 이행 실적 점검을 통해 PSB의 역할이 결정되는데 민영화 방송사는 그 역무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요 시간대 뉴스 방송, 지역 콘텐츠 등의 역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프로그램 저작권 귀속 문제 등은 인수 대상 회사들이 가장 관심 가지는 부분입니다.
참고로 채널4의 승인 조건(Remit)은 “약자의 목소리를 옹호하고 혁신하고, 과감한 창조적 도전을 할 것. 변화를 갈망하며 영국 전역 다양성을 지원하는 콘텐츠를 만들 것”이었습니다.
(It was set up with a remit to champion unheard voices; to innovate and take bold creative risks; to inspire change; and to stand up for diversity across the U.K)
민영 방송사가 하지 못할 조건은 아니지만 공적 영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지금 구조가 계속되면 공적 역할을 아예 하지 못할 상황을 우려해 민영화라는 고육책을 선택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민영 방송사들인 M61와 TF1이 합병을 준비 중입니다. 프랑스 방송 광고 시장의 70%를 차지할 합병이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승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가진 점유율이나 매출이 넷플릭스, 디즈니+에 비하면 미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정부 정책은 비판을 많이 받지만 적어도 하나 인정해야 하는 건 ‘갈등을 피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방송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책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