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9)
어제(미국 시간 27일) 발표된 AT&T의 실적에도 볼 수 있듯,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유료 방송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AT&T는 2020년 4분기 62만의 유료 방송 가입자가 줄어 전체 가입자도1,7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2018년만 해도 가입자가 2,5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올해(2021년)도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유료 방송 VS 스트리밍 서비스 5년 내 역전]
미국에선 유료 방송 플랫폼 가입자가 줄어들면서 방송 채널 사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소규모 채널들은 플랫폼에 빠지거나 사업을 접고 있습니다. 미국 케이블TV사업 1위인 컴캐스트와 버라이즌(Verizon)은 올해부터 음악 전문 케이블TV채널인 Fuse를 채널 라인업에서 삭제했습니다. 이 채널은 가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가 투자해 화제를 모았던 방송사입니다. 버라이즌은 “퓨즈는 시청률에 비해 너무 많은 프로그램 사용료를 요구한다”며 채널 제외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컴캐스트는 “퓨즈의 콘텐트가 다른 채널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컴캐스트와 버라이즌의 말을 정리하면 ‘특색 없는 채널이 너무 비싸다’서 제외됐다는 겁니다. Fuse의 CEO가 일관성이 없다며 비판해도 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컴캐스트의 NBC유니버설은 최근 케이블 스포츠 채널인 NBCN의 사업을 올해 말 접겠다고 밝혔습니다. NHL 플레이오프, NASCAR 등은 가치 있는 프로그램 중계권은 또 다른 채널인 USA네트워크로 옮겨집니다. 몇 개의 스포츠 중계권은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전에도 NBC유니버설은 케이블TV채널들을 정리해왔습니다.
경쟁력 없는 전문 채널인 E!, Oxygen 등이 대상이었습니다. 닐슨에 따르면 USA, Bravo, E! And Syfy 등의 채널은 지난 2014년 이후 1,000명의 가입자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름 메이저 장르인 스포츠 채널을 정리하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 옵니다. NBC유니버설은 여러 곳의 스포츠 채널들을 정리해 USA네트워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케이블TV와 위성방송 플랫폼과의 수신료 협상에서 우위에 서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유료 방송 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은 가입자가 계속 감소하는 반면,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자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E마케터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케이블TV 가입자 중 5,00만 명이 이탈했습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었으면 유료 방송 가입자 감소는 더 가파를 뻔 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아무래도 TV를 보는 시간도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가 더 위험해 보입니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유료 방송 가입자는 향후 5년 이내 36%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지난 2015~2019년 사이 감소율이 9.5%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수치가 얼마나 더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 증가는 빠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가입자 감소, 이제 채널의 위기로]
플랫폼 사업자의 약화는 전체 레거시 미디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미국 방송 시장 생태계가 유료 방송 가입자가 낸 방송 요금으로 플랫폼이 생존하고 플랫폼이 지급한 프로그램 사용료 혹은 저작권으로 채널들이 유지되는 순환 사이클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입자가 줄어들면 이런 사이클의 깨집니다. 앞서 언급한 스포츠 채널 중단이나 채널 제외가 바로 이를 반증합니다.
그렇다면 왜 스포츠채널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을 까. 사실 스포츠 채널은 미국 케이블TV 상품 구성에 가장 비싼 채널입니다. 케이블TV채널이 포함된 패키지는 대부분 고가입니다. 케이블TV채널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가 가장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상황이 좀 바뀌었습니다. 실내외 스포츠 경기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면서 스포츠 채널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했습니다. 라이브 스포츠를 보지도 못하면서 비싼 요금을 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뉴스나 일반 예능 채널들의 경우 케이블TV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입니다. 자칫하면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채널의 실제 가치와 관련한 의미 있는 결과를 전해드립니다. 미국 한 미디어는 ‘미국에서 가장 고가의 케이블TV 상품’의 월 이용료 구성을 채널로 나눴습니다.
쉽게 말해 한 달에 100원을 가입자가 낸다면 어떻게 100원이 이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그렇다면 비싼 채널이 높은 가치를 줬을까. 위 표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ESPN은 미국에서 월 7.64달러를 가지고 가지만, ‘정기적으로 시청하는 비율은 21.6%에 그쳤습니다.
월 1달러를 수신료로 받아가는 CNN도 오히려 10명 중 2명(24%)이 정기적으로 시청한다고 답했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ESPN은 보지도 않는데 비싼 돈을 내고 있는 겁니다. 이 표에서 보면 한국과는 달리 지상파 방송사들도 각자 받아가는 비용이 다릅니다.
미국은 심지어 매년 가입자가 줄고 있지만 유료 방송 이용료는 인상되고 있습니다. 채널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나 재전송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입니다. 요금을 올리기 힘든 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불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입자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료 방송 가격 인하…채널의 운명은?]
미국의 미디어 전문가들은 많은 가입자들이 이런 부담스러운 가격에 유료 방송 가입을 끊고 있어, 방송사들은 상품 구성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더 많은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남은 가입자들에게 큰 돈을 받아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격을 내리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라는 이야기인데 하나의 대안은 알 라 카르테 케이블(à la carte cable) 방식을 도입하는 겁니다. 보는 채널 별로 금액을 과금 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알 라 카르테 방식을 도입할 경우 유료 방송 사업자의 매출 하락은 불가피할 겁니다. 그래서 버라이어티(Variety)는 현재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선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채널 별로 가격을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스포츠와 뉴스만을 보는 시청자를 가정해보겠습니다. ESPN와 대학 스포츠 중계 채널 SEC네트워크, ACC네트워크 등을 모두 포함해 구독하면 69.84달러가 됩니다. 여기에 CNN은 한 달에 4.19달러입니다.
이렇게 4개 채널 만을 보는 대로 75달러(우리 돈으로 8만 5,000원)이 듭니다. 지금 패키지 기준은 10달러입니다. 지금 10달러를 주고 보는 채널을 75달러를 주고 본다면 소비자들이 동의할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채널들이 매출 하락이 불을 보기 뻔한 가격 인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료 방송은 쇠퇴하고 월 정액제인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이동이 불가피하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미국 시장과는 달리 한국 시장은 유료 방송 가격은 형편 없이 낮습니다. 그래서 채널 별 과금 방식으로 전환은 여기서 보듯 가격 인상을 가져 올 겁니다.
한국 시청자들 역시 화를 낼 겁니다. 그 다음 날 바로 유료 방송을 절독하고 스트리밍으로 옮길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한국 유료 방송의 위기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도 방송 콘텐트로 힘든 시기를 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