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공영방송의 위기 혹은 기회, 영국 채널4의 '1,000시간' 유튜브 동행 실험
젊은 영국 공적 서비스 방송 채널4, 유튜브에 총 1,000여 시간 프로그램 공개하는 파격 MOU 공개. 5월부터 연말까지 영국 유튜브 이용자는 채널4 프로그램 무료로 즐길 수 있어. 대신 광고 영업은 채널4 담당. 이를 포함한 채널4 민영화, 스마트TV 공영방송 입점 강제 등 영국 공영 방송 환경 급변
(이 글은 채널4-유튜브, 채널4 민영화, 영국 방송 규제 변화 등 3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공적 방송 서비스 채널4(Channel)가 유튜브와 동행을 시작했습니다. 한시적이지만 채널4는 유튜브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채널4 콘텐츠를 유튜브를 통해 영국과 유럽 전역에 공급하는 내용입니다.
영국 오디언스들을 2022년 말까지 유튜브에서 1,000시간 분량 채널4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고 광고는 채널4가 자체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공영 방송인 채널4로서는 상당한 도전입니다. 지금까지 채널4는 자체 플랫폼 강화 정책에 따라 유튜브에 프로그램 공개를 제한적으로 해왔습니다.
[젊은 영국 공영방송의 유튜브와 동거 실험]
채널4에 따르면 이번 계약은 디지털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한 채널4의 미래 전략 ‘퓨처4(Future4)’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퓨처4는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고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기 위해 수립됐습니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글로벌 플랫폼(유튜브)에서 방송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게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채널4의 판단입니다. 협약에는 채널4의 광고 영업 부서(4Sales) 내 유튜브 전담 팀을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채널4가 유튜브 플랫폼에서 광고를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디지털 광고 판매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도 있는 겁니다.
채널4 CEO 알렉스 마혼(Alex Mahon)은 “이런 혁신적 전략 파트너십은 채널4의 전문 분야”라며 “유튜브와의 새로운 관계는 우리의 젊은 시청자를 계속 확장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디지털 분야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계약으로 유튜브에 공개되는 프로그램은 채널4와 E4(16~34세 겨냥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전문 방송 TV채널)이 만든 다수의 작품입니다. 시청자들은 신작과 기존 인기 시리즈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채널4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채널4는 뉴스와 일반 프로그램 유튜브를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채널4 프로그램 유튜브에서는 현재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이 홍보 영상과 하이라이트만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하는 채널4가 공개한 시청이 가능한 프로그램 목록입니다.
“8 Out Of 10 Cats,” “AS: Who Dares Wins,” “Nikki Grahame: Who Is She?,” “Unapologetic,” “Location, Location, Location,” “Gemma Collins: Self-Harm and Me,” “Davina McCall’s Language of Love,” “Kathy Burke: Money Talks,” “The Dog House” and “Devon & Cornwall.”
채널4는 일부 프로그램들은 채널4와 E4에서 첫 방송된 후 30일이 지난 뒤 유튜브에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튜브 시청이 가능한 채널4 콘텐츠는 5월부터 순차적으로 제공됩니다.
[공영방송의 유튜브행 어떻게 볼 것인가]
채널4는 유튜브와의 동거에 대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채널4에 따르면 영국 18~34세 세대의 98%가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채널4가 영국 공영 방송사 중 젊은 세대와의 가장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튜브와의 협업은 충격으로도 다가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상파 TV플랫폼 만으로는 젊은 세대와 원활히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채널4도 영국 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채널4의 오디언스 도달율은 10% 정도였는데 지난해에 비해 3.7% 떨어진 수치입니다. 오프콤(OFCOM)은 2017~2020년 사이 영국 지상파 방송의 TV 시청률이 10% 가량 떨어졌다고 최근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리밍의 확장 속도는 무섭습니다. 넷플릭스가 잠시 멈췄지만 디즈니+는 2022년 첫 3개월에만 79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습니다. 올해도 유럽 11개국에 추가 진출합니다. 이제 그들은 1억 3,800만 명(3월 말 기준)의 가입자를 보유했습니다. (추가로 전달드리겠습니다.)
연말까지 한시적 협업이지만 ‘무료’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시키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측면에서 이번 전략이 채널4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공영으로 존재 필요성에 논란이 계속 커지며 민영화의 위기에 직면한 채널4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입니다.
유튜브 콘텐츠 유통을 통해 ‘디지털, 스트리밍에서의 채널4 콘텐츠 경쟁력’을 실험할 수도 있습니다.
[민영화 앞둔 공적 서비스 방송 채널4]
채널4(Channel4)는 2023년 민영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채널4의 첫 민영화를 언급했고 영국 정부는 지난 5월 9일 다시 한번 민영화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민영화의 가장 큰 정당성은 스트리밍 시대 ‘공적 지배 구조를 가진 상업적 공영방송’은 생존과 원래 설립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채널4의 승인 조건(Remit)은 “약자의 목소리를 옹호하고, 혁신하고, 과감한 창조적 도전을 할 것. 변화를 갈망하며 영국 전역 다양성을 지원하는 콘텐츠를 만들 것”이었습니다.
민영화는 민간 사업자로의 채널 매각을 의미합니다. 현지 미디어들은 매각 가격을 최대 15억 파운드(2조 3,000억 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채널4 잠재적인 인수자로는 ITN, 디스커버리(Discovery), 스카이(sky) 등 영국 민영 방송사뿐만 아니라, 파라마운트 글로벌(Paramount),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미국 스트리밍 사업자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공영 비영리법인(publicly owned not-for-profit corporation)이 소유하고 있는 채널4는 한국 MBC와 지배와 영업 구조가 유사합니다. 지난 1982년 런칭했고 지상파 채널과 음악 채널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원은 공적 자금은 투자되지 않고 90% 이상 광고 상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독립 외주 제작사들로부터 위탁 생산됩니다. 광고 매출은 승인조건(public service remit)에 의해 다양한 오디언스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모두 쓰입니다. 채널4는 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런던 외 리즈, 브리스톨, 글래스고우에 창작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채널4 민영화가 영국 방송에 미치는 파장은 큽니다. ‘공영이 소유하고 민영 재원으로 운영되는 형태의 공영 방송(privately-owned broadcaster)’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채널4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는 독립 외주사와채널4 종사자들은 민영화에 크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채널4는 과거 6번 정도의 민영화 시도가 있었고 그때마다 마혼 CEO 등 채널4 직원들과 지지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분위기가 다릅니다. TV가 아닌 넷플릭스 등 다른 진영의 적들이 공영 시스템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부에선 반대가 여전합니다. 마혼 CEO는 FT인터뷰에서 “정부는 스트리밍 시대, 공영방송의 존재 능력을 의심하고 있지만 이는 종말론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혼은 “상업적으로 재정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우리는 매우 건전한 상태”라며 “지난 10년 간 과거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현금 보유고를 기록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압력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마혼은 임기 5년 동안 민영화의 압력 가운데 코로나 대유행에 대응해 제작 시설을 런던 외곽으로 이전하고 일부 시설을 폐쇄해 큰 매출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12억 파운드(1조 8,800억 원)의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흑자 규모는 1억 달러입니다. 전체 매출 중 스트리밍 서비스 비중 19% 입니다. 지난 2021년 채널4 매출은 11억 6,000만 파운드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채널4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는 빅테크에 대항하는 채널4의 개혁 대신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영국 문화부장관(Culture secretary)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는 “미디어 지형 격변 시대에 오직 민영 소유와 민영 투자만이 채널4를 생존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상업적 공영방송의 민영화는 ‘까다롭고 복잡하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채널4 매각 가격은 향후 부여될 승인 조건(Remit)에 따라 5억 파운드에서 15억 파운드까지 넓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강력한 인수 조건(독립 외주 유지, 저작권 양도 등)과 방송의 공공성을 승인 조건(public service Remit)으로 남겨놓을 경우 민영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채널4는 “공영방송에서 채널4가 제외된다면 영국 창조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설문조사를 진행해 프로듀서, 광고주, 유명인, 지역 주민 중 95%가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리밍 시대, 공영방송 생존법 고민하는 영국]
마혼은 지난 3월 민영화를 피하기 위한 대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공적 소유 구조를 유지하는 한편, 영국의 창조적 경제, 특히 런던 이외 지역 지출을 늘리기 위해 민간 투자를 이용하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도리스 장관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공적 역할이 분명한 방송의 민영화는 매우 어렵습니다. 민영 채널에 공영 방송 수준 의무를 지울 수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습니다.
도리스 장관이 공개한 민영화 계획이 담긴 백서에는 채널4의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조건으로 (민영화가)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할 수 있게 하고 독립 외주 제작사 작품 편성 비율도 다소 낮추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당연히 채널4가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런던 이외 지역의 자자체 단체장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채널4는 현재 영국 정부의 민영화 백서 수준으로 외주 제작 비율이 낮아진다면 지역 및 독립 제작사는 연간 최대 3억 2,000만 파운드(5,030억 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마혼도 “민영 방송사라면 당연히 외부 투자를 줄이는 쪽으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 등 사회를 통합하는 다양성 프로그램은 만들어지지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4월 28일 공개된 영국 정부의 공적 서비스 방송 백서에는 채널4 민영화뿐만 아니라 20년 만에 가장 큰 영국 방송 규제 정책 변화가 담겼습니다. BBC, ITV, 채널 4 등 공적 서비스 방송들이 스카이, 아마존, 삼성과 같은 디지털 TV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하는 핵심입니다.
백서는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스마트TV에서 공적 서비스들의 앱(BBC iPlayer, ITV Hub, All 4)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조사나 TV플랫폼들이 시스템을 갖추도록 강제하는 조치를 포함됐습니다.
이와 관련 영국 방송 규제 기관은 스카이 등 유료 방송 사업자와 삼성 등 스마트TV제조사에 공적 서비스를 의무편성(must-carry)하게 하는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영국 방송 규제 집행 기관인 오프콤은 방송사들이 빅테크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콘텐츠 시청 데이터, 광고 수익에 대한 통제권, 콘텐츠 대가 지불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울러 영국 정부는 백서에서 월드컵 등 국민 관심 경기의 공적 서비스 방송 접근권(중계)도 강화했습니다.
정부와 자국민을 도왔던 영국 공영 방송은 이제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영국과 한국이 다른 점은 그들은 도울 수 있을 때(정부의 규제가 작동할 때)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