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나는 아침 편집 회의를 하러 여기 오지 않았다" CNN의 새로운 대표 크리스 리히트의 미래
지난 5월 5일 CNN 새로운 대표 크리스 리히트. MSNBC, CBS의 아침뉴스의 포맷을 완성 시킨 인물이지만, 보도국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 밝혀. 세세히 모든 이슈와 앵커 선임에 개입하는 전임 대표 제프 저커와는 180도 다른 스타일. CNN의 미래에도 주목
“나는 CNN의 뉴스 아젠다에 개입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유료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를 한 달 만에 접어 화제가 됐던 CNN이 새로운 수장(CEO)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월 5일(목) CNN에 출근한 크리스 리히트(Chris Licht) CNN대표(Chairman and Chief Executive Officer of CNN Worldwide)는 첫 행사로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을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리히트는 “자신은 CNN 보도 방향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행사는 수천 명의 직원이 참여했고 아침 7시 프로그램 진행자인 에린 버넷(Erin Burnett)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전임 CEO였던 제프 저커(Zeff Zucker)가 부하 직원과의 연인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2월 급작스럽게 물러난 이후 3개월 만에 부임한 CEO였기에 직원들과 언론의 궁금증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의 경영 스타일 뭔지 그리고 그의 지휘 하에 CNN이 어떻게 변할지 입니다.
[리히트 “오전 9시 보도국 참여 임원 회의를 주재하지 않겠다”]
사회자 에린 버넷은 첫 질문을 도발적으로 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CNN운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말입니다.
전임 제프 저커는 CNN에서의 카리스마가 엄청난 CEO였기 때문에 리히트가 어떤 스타일지 궁금했던 겁니다. 저커는 2013년 이후 9년 간 CNN을 맡으면서 지금의 유명 앵커 스템을 구축하고 뉴욕타임스 급 고급 뉴스 콘텐츠로 CNN+의 런칭도 주도했습니다. 돈 레몬(Don Lemon) 등 앵커의 충성도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 리히트의 경영 스타일은 제프 저커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뉴스 부조 대신 사무실에서 직원과의 회의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히트는 자신의 사무실도 CNN 보도국(Newsroom)에서 먼 22층에 만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매일 아침 오전 9시 보도국 회의를 주재하고 그날 아젠다를 결정하던 저커와는 달리 리히트는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리히트는 “일일 프로그램의 운영이나 출연자 결정 등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 뉴미디어 퍽뉴스는 이와 관련 “만약 그의 생각이 있다면 CNN 프로그램 담당 대표인 마이클 배스(Michael Bass)에 의견을 전달하고 배스가 제작 프로듀서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방식은 과거 CNN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러나 모 회사의 경영 철학에는 맞습니다. CNN의 모회사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 대표인 데이비드 자슬라브도 각 채널들의 개별 프로그램에 개입하기 보다는 보다 큰 결정하길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타운홀 미팅에서 CNN 직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저녁 9시 뉴스 앵커가 누가될 지에 집중됐지만 리히트는 별다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시간 진행자였던 크리스 쿠오모(Chris Cuomo)는 형인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의 성추행 은폐를 공모했다는 이유로 CNN에서 퇴출 됐습니다. 이후 CNN은 프라임 타임인 저녁 9시에 붙박이 앵커를 임명하지 않고 여러 명이 돌아가며 진행하는 로테이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리히트 CEO는 “나는 일일 뉴스 편집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온 것이 아니다”라며 “나의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여러분 모두를 지원하는 것이며,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리더십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라고 명확히 했습니다. 큰 결정 만을 하고 나머지는 개별 결정은 조직에 일임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제프 저커가 CNN을 앵커 중심 회사로 만들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그의 퇴임 이후 TV시청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녁 7~11시 사이 프라임 타임 시청률 급락은 심각합니다. 디지털 부문에서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CNN+의 폐쇄에서 볼 수 있듯 아직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들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 낙태 금지 논란, 중간 선거 등의 빅 이슈로 CNN TV시청률이 반등했지만, 추세적 상승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리히트에게는 시청률을 넘어서는 디지털 구독 시장에서 CNN의 새로운 항해를 책임질 막중한 임무도 주어진 셈입니다.
지난 2022일 3월 29일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CNN+(유료 스트리밍, 월 5.99달러)는 첫 3주 유료 가입자 15만 명, 일일 방문자 1만 명의 성적을 거두면서 모회사 WBD에 의해 3주만에 폐쇄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전임자 제프 저커가 3년 간 4,000억 원 가량을 쏟아 넣으며 CNN 개국 이후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홍보한 사업입니다.
[CNN, 스트리밍 속 앵커에서 벗어나 속보, 현장 속으로]
이런 ‘원거리 조직 운영 방식’은 기존 CNN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CNN뿐만 아니라 미국의 뉴스룸은 통상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운영돼 왔습니다.
보도의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유럽과는 달리 (오너 아닌) 대표는 프로그램 편성, 앵커 채용, 유명인 출연 등을 상당히 관여해왔습니다. 특히, 전세계 이슈들을 24시간 관리해야 하는 CNN의 경우 제프 저커와 같은 강력한 러더십의 CEO가 적합해 보였습니다. 과거 CNN출신 중 한 명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NN 뉴스부문은 다리 위에서 기관실 물을 함께 퍼낼 리더들에 의해 운영됐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파고는 뉴스 부문 경영 대표들은 ‘편집, 보도국’에 머물도록 두지 않습니다. 리히트에게 디지털에서 CNN에게 구명보트를 만들 임무가 주어진 것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제 미국 방송 뉴스룸들의 보도 형태도 변할 것으로 보입니다.
리히트의 경영 스타일로 인해 CNN의 보도가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버넷트의 질문 중 리히트는 전임 CEO 저커의 경영 스타일을 ‘극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히트는 과거 그가 연출했던 아침 뉴스(NBC '투데이'와 '모닝조)에서 함께 근무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지금 나를 만든 건 제프”라며 “세계의 리더로 CNN을 만든 것도 제프”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직 저커 시대를 그리워하는 직원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과찬이 저커의 스타일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강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CNN이 ‘리히트의 스타일’과 ‘과거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속보, 현장 뉴스, 탐사보도 등 이른바 하드 뉴스(Hard News)로 회귀하는 겁니다.
리히트는 현장 보고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신은 마이클 배스를 통해 보도국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기자나 프로듀서들은 배스와 이야기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의사 결정에 개입할 때도 배스와 함께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과거 제프 저커가 앵커들과 직접 소통하며 프로그램 방향을 일일이 지시했던 ‘마이크로매니징’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의지입니다. 뉴스에서 현장 중심은 ‘의견’보다는 ‘뉴스와 현장’에 더 집중할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또 리히트의 전공 분야인 아침 뉴스에 대해선 CNN의 아침 뉴스를 부활할 것이라고 공개했습니다. 또 선거 개표 방송 등 메이저 이벤트 보도는 적극적으로 함께 고민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지상파 방송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의 핵심 뉴스인 아침을 다시 살린다는 건, 과거의 CNN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강조의 다른 말입니다.
크리스 리히트 CNN대표는 CBS의 스페셜 프로그램 담당 부사장을 맡아왔으며 미국 심야 방송 중 시청률 1위인 ‘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를 2017년 이후 책임져왔습니다. 이에 앞서 리히트는 20년 넘게 지상파 방송 뉴스의 아침 뉴스를 기획했습니다. 현재 CBS This Morning의 포맷도 2012년 리히트가 만든 작품이며 그는 MSNBC의 아침 뉴스(Morning Joe)의 공동 크리에이터이며 수석 프로듀서로도 활동했습니다.
한편, 미국 뉴스룸은 스트리밍과 함께 요동치고 있습니다. NBC유니버설은 최근 2022년 6월부터 MSNBC뉴스의 인기 프로그램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 Dailly)’를 스트리밍 서비스 NBC뉴스 나우(NBC News NOW)로 옮겨 ‘Meet The Press Now’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기 상품을 TV에서 스트리밍으로 이주시키는 특단의 결정입니다.
NBC뉴스 대표 노아 오펜헤임(Noah Oppenheim)은 관련 보도 자료에서 "’밋 더 프레스’를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 (스트리밍) 플랫폼의 위상을 강화할 것”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