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커 없는 저커 뉴스를 준비해야 하는 CNN...전설적 CEO 부재 후 CNN의 미래는
제프 저커 (Jeff Zucker) CNN 대표 겸 워너미디어 뉴스&스포츠 대표, 동료 직원과의 사적 관계로 전격 사임 결정. 2013년부터 근무했던 제프 저커는 팩트 뉴스였던 CNN을 의견과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로 격상시킨 인물. 특히, 앵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스트리밍 뉴스 가열차게 준비했던 CNN입장에서 당혹감 지속. CNN의 미래는
“저커는 실생활보다 뉴스 비즈니스에서 더 큰 존재(Zucker is a larger-than-life figure in the news business)’
CNN 미디어 전문 기자인 브라이언 스텔터(Brian Stelter)가 자신의 뉴스레터에 쓴 첫 문장입니다. 그가 언급한 저커는 바로 CNN의 대표 제프 저커(Jeff Zucker)입니다.
제프 저커는 동료 임원과의 사적 관계가 문제가 돼 2022년 2월 2일 사퇴했습니다. 저커의 표현대로 ‘합의된 관계’지만 너무 공개가 늦었고 처리도 불투명했기 때문입니다.
스텔터 기자는 함께 근무한 동료가 아니면 보지 못할 저커의 인간적인 면으로 ‘미디어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스텔터는 “매일 저녁 10시 혹은 11시 전후 발송되는 뉴스레터에 대해 뉴스레터가 너무 늦게 발송된다는 농담이나 스토리 아이디어를 주는 친근한 보스였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도 이런 결말을 예상치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제프 주커가 뉴스레터에 첫 머리에 등장한 이유는 CNN 대표였고 불명예 퇴진을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프 저커는 MSNBC보도채널을 만들었고 스트레이트 뉴스만을 전하는 기계적 균형을 전하는 채널이었던 CN을 바꿔놓은 인물입니다. 지금 CNN이 가진 ‘좌파 진영’의 싱크탱크라는 지위는 제프 저커가 만들어놓은 위상입니다.
그래서 그의 퇴진은 더 충격적입니다. 최초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CNN+론칭을 진두 지휘하던 그의 부재는 뉴스 스트리밍 비즈니스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디스커버리(Discovery)와의 합병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 1위로 나아간다는 모회사 워너미디어의 전략 측면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일 수 밖에 없습니다. CNN은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스트리밍 경쟁사 어디도 가지지 못한 핵심 콘텐츠 자원입니다.
워너미디어의 모회사 AT&T는 2월 1일 워너미디어를 분사해 디스커버리와 합병한다는 계획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합병 규모만 430억 달러(51조 원)입니다. 저커는 현재 워너미디어의 뉴스와 스포츠 부문 대표(chairman of news and sports)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저커는 9년 동안 CNN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사임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경질(terminated)됐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CNN의 모회사인 워너미디어(WarnerMedia)는 공식 발표에서 “해임 이유는 측근인 앨리슨 골러스트(Allison Gollust) CNN EVP 겸 마케팅 최고책임자(COO)와의 교제 사실(romantic relationship)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워너는 ‘이는 회사 근무 규정(Standards of Business Conduct)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골러스트는 저커와 NBC뉴스에 시절부터 같이 근무한 바 있습니다. 2013년 저커 대표가 CNN으로 옮겨온 이후 가장 먼저 뽑은 직원이 굴러스트입니다.
저커의 문제가 붉어지게 된 계기는 인기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Chris Cuomo)의 비행에 대한 내부 감사입니다. 쿠오모는 형인 앤드류 쿠오모(Andrew M. Cuomo) 전 뉴욕주지사가 직원 성추행과 성희롱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고 또 이를 덮기 위해 함께 공모한 혐의로 CNN에서 퇴출됐습니다.
그러나 크리스 쿠오모는 퇴출 당시 CNN이 퇴직 위로금(the anchor’s severance)이나 남은 계약 기간에 대한 보상금(honor the remainder of current contract)을 지급을 거부한 것을 두고 강한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너미디어 측 변호사들과 협상을 하던 중 쿠오모의 법률팀은 저커의 굴러스트와 관계를 지적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CNN뉴스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제프 저커는 TV업계에서 30년을 일했습니다. 그 대부분을 뉴스 비즈니스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저커는 미국 뉴스 비즈니스에서는 그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임원으로 불립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커가 NBC에서 근무할 당시 ‘어페런티스(The Apprentice)’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데뷔시킨 인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그의 출연 허가로 도널드 트럼프는 일약 스타가 되고 향후 대통령까지 가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저커와 계속 싸움만 했습니다.
저커는 그 누구보다 뉴스룸, 그리고 앵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리더였습니다. 뉴스 도중 앵커의 이어폰(earpieces)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주조정실을 종종 방문했습니다.
제프 저커는 CNN 직원들 사이에서 ‘생존자(survivor)’로 불립니다. 대장암, 심장 수술 등을 극복하고 지금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저커는 NBC유니버설에서 바닥에서 최고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지적인 인물입니다. 이후 CNN으로 옮겼는데 창업주 테드 터너 이후 가장 인상적이고 존경 받는 리더였습니다.
특히, 디스커버리와의 합병 이후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사였습니다. 지난해 2월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2021년 말 사임을 밝혔지만 미디어 지형 변화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디스커버리와 워너미디어의 합병으로 만들어질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대표로 저커의 절친인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가 내정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번에 경질되지 않았다면 저커는 자슬라브와 함께 CNN+의 스트리밍 서비스 전략과 더 나아가 새로운 미디어 그룹의 뉴스 전략을 만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면도날 같은 프로듀싱으로 주목받아
제프 저커가 뉴스 미디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 저커는 NBC의 아침 뉴스 NBC투데이(Today)의 수석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프로그램을 1위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세세한 것까지 짚어주는 친절한 연출자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때 앵커로 같이 일했던 맷 라우어(Matt Lauer)와 케이티 쿠릭(Katie Couric)이 스타로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쿠릭은 지난 2021년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저커와 쿠릭의 친밀한 관계를 일부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쿨러스터와 그녀의 남편, 아이가 제프와 그의 전 아내가 살고 있었던 아파트로 바로 위로 이사왔다는 일화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결국 제프 저커는 2007년 NBC유니버설의 대표(CEO)에 올라 2010년까지 근무합니다. 그 뒤 암이 발병해 잠깐 회사를 쉰 뒤 2013년 CNN의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이 때부터 CNN은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제프 저커도 자연스럽게 대중의 인식에 들어오게 됩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CNN과 트럼프는 극렬하게 대립합니다.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CNN은 트럼프의 연설들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공격합니다. 이때 트럼프가 CNN을 상대로 ‘CNN Sucks’라고 공격한 것이 CNN에게는 훈장이 됩니다.
[객관에서 주관으로 제프 저커의 모험]
CNN은 제프 저커의 지휘 아래 스트레이트 보도 보다 논평이나 의견 프로그램에 집중합니다. 뉴스 프로그램에 진보 진영이 좋아할만한 자신들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앵커와 반 트럼프 진영 해설 전문가 등을 대거 출연시켰습니다.
이런 도전이 CNN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저커는 모든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챙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심지어 뉴스에 나가는 자막(chyrons)에까지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저커는 기자들이 보도국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또 긴호흡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돈 레몬 앵커는 “저커는 우리가 틀렸을 때 우리를 바로 잡아줬고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을 때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고 말했습니다.
제프 저커는 CNN의 체질을 완전 바꿔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폭스 채널과 MSNBC에 밀려 만능 3등하던 CNN은 저커 부임 이후 팩트를 넘어 의견 방송으로 진화합니다. 이에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로 10년 만에 자리잡습니다. 두 방송 모두 보수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에 착안, CNN은 과감히 좌파와 진보로 타깃 오디언스를 잡았습니다.
재임 시절, 제프 주커는 앵커와 현장 특파원, 출연 해설가들이 그들의 프로그램과 리포팅에 자신의 목소리와 시각을 더 많이 넣을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때로는 경쟁 서비스의 전략도 일부 참고했습니다.
CNN의 성공한 앵커들(Chris Cuomo, Brianna Keilar, Lemon, Van Jones)은 방송에서 그들의 선배보다 더 많은 해석과 분석, 논평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말입니다.
팬이 생기고 오디언스들이 더 강하게 열광한 것은 물론입니다. 더 많은 양념을 친 음식은 충성도있는 고객들을 끌고 왔습니다. 이들이 진행하는 방송 인터뷰는 보다 공격적이었습니다. 크리스 쿠오모는 팬데믹 기간 자신의 형인 뉴욕 주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이런 적극성은 많은 반발도 불러왔습니다. 특히, 트럼프 정부와의 대립은 유명합니다. 한때 트럼프 정부는 CNN의 워싱턴 출입기자를 출입 금지시켰습니다.
이에 CNN에서 근무했던 일부는 제프 저커를 창업주 테드 터너(Ted Turner)의 반열에 올려놓는습니다. 터너가 24시간 뉴스의 틀을 만들었지만 제프 저커는 스타 앵커가 진행하는 의견 뉴스라는 포맷을 완성했다는 겁니다.
최근 저커 대표는 CNN+를 구축하는데 집중해오고 있었습니다.
CNN을 변화시킨 그 방법 그대로입니다. CNN 유명 앵커와 인플로언서, 전문가들을 프로그램 진행자로 영입해 팬들과 보다 긴밀한 교감을 만드는 전략입니다.오디언스와 크리에이터가 직접 만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같은 자장 내에 있습니다.
에바 몽고리아(Eva Longoria), NPR스타아 오디 코니쉬(Audie Cornish), 폭스 뉴스 앵커 크리스 월래스(Chris Wallace) 등이 CNN+에 합류했습니다. 이들 모두를 영입하는데 제프 저커가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CNN은 이제 그가 없는 디지털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프 저커는 성명 마지막에서 “우리는 함께 위대한 9년을 함께 보냈다”라며 "이곳에서의 임기가 다르게 끝났으면 좋겠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놀라운 달리기였다. 그리고 매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저커 없는 저커 스타일 CNN의 미래]
이제 CNN은 저커가 없는 뉴스 비즈니스 세계에서 생존해야 합니다. 점차 떨어지고 있는 TV뉴스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하며 뉴미디어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이제 오디언스들은 왠만한 뉴스 정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얻고 있습니다. CNN의 시청률은 트럼프 퇴임 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지금 뉴스의 틀을 만든 저커의 부재는 뼈아픕니다. 특히,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뉴스 스트리밍이라는 포맷으로 런칭을 코앞에 둔 CNN+는 ‘저커가 없는 저커 스타일 뉴스 서비스’를 완성해야 내야 합니다. 후임자가 누가 되든 새로운 뉴스 스타일을 만들기 전에는 상당히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 불명예 사임이라며 환영]
폭스 뉴스 등 CNN과 정치적으로 대립각에 있는 미디어들과 트럼프 등 우파 정치인들은 저커의 퇴장을 일제히 환영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축하에 가까운 성명을 냈습니다. 트럼프는 성명을 통해 저커의 사임을 ‘세계급 추잡한 사임(world-class sleazebag)’이라 폄하했습니다.
트럼프는 “저커가 많은 이유 때문에 경질됐지만 가장 큰 사유는 시청자와 함께 (자신의 사임 이후)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폭스 뉴스는 한 시간 정도를 그의 퇴임에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불명예 사임(resigns in disgrace)’이라는 단어를 계속 올려 두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