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TV가 스트리밍과의 10년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자기 잠식']
여전히 막강한 콘텐츠를 보유한 레거시 미디어 TV는 넷플릭스와의 10년 전쟁에서 완패. 2021년 이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편수에서도 밀려. 한 때 제국을 건설했던 TV비즈니스가 넷플릭스에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자기 잠식'. 자기 콘텐츠에 본체가 당하다.
지난 2013년 넷플릭스(Netflix)가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를 내놓은 이후 10년 동안 글로벌 미디어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방송 미디어 시장을 이끌어 가던 글로벌 유료 방송, 지상파 TV업계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격을 경험했고 어느 순간 이들에게 선두를 허용했습니다. 물론 이는 레거시의 잘못 만은 아닙니다. 오디언스의 변화 때문이고 방송사들은 문제를 해결하긴 너무 몸집이 무거웠습니다.
이제 TV는 (지금은) 확실히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전쟁에서 졌습니다. 적어도 미국에서 말입니다.
TV가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놓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은 두 개 전쟁을 치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TV업계는 새롭게 부상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대응해야 했고 TV의 핵심인 ‘실시간 방송 채널’도 살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미디어 플랫폼들은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보유했고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떠한 콘텐츠를 더 좋아하는 지를 할리우드에 비해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에 놀란 지상파 방송 “자기 살을 내주다”]
2013년 넷플릭스의 갑작스러운 부상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넷플릭스를 만든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넷플릭스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방송사들은 (오래된 구작이지만) 넷플릭스에 작품들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젊은 세대들의 시청 패턴 변화(TV에서 모바일로)에 힘입어 넷플릭스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미디어 기업들의 대응은 안일했습니다.
지난 2008년 TV방송사들의 합작 모델이었던 훌루(Hulu)의 등장은 TV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전략이 없었던 훌루가 자기 잠식이 가능한 모델이었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새로운 수익을 안겨는 서비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훌루는 애초 오리지널(Original)보단 독점(Exclusive)을 택했습니다. 2016년만 해도 훌루는 폭스, 디즈니, 컴캐스트, 타임워너, 바이어컴(CBS)의 콘텐츠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였습니다.(이들 모두가 주주였습니다.)
미국 메이저 유료 방송사들은 넷플릭스에 대응해 훌루에서 힘을 합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순진했습니다.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대부분 케이블TV 작품, 프로그램들을 훌루에 유통했습니다.
처음 훌루는 매우 저렴했습니다. 광고를 보지 않는 상품 가격이 월 11.99달러(2만 4,000원)에 불과했고 광고를 보면 7.99달러면 거의 모든 케이블TV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케이블TV의 월 이용 가격은 최소 7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만약 스포츠나 지역 뉴스에 열광하지 않는 구독자라면, 월 8만원의 가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정확히 미국 유료 방송은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유료 방송을 제공하는 ‘VMVPD’도 서비스했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사치였습니다. 그 사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나아가면서 가입자가 급증했습니다.
콘텐츠를 자신들이 원할 때 온라인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스트리밍의 능력은 유료 방송 사업자들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많은 가입자들이 코드 커팅(유료 방송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했습니다. 물론 훌루도 오리지널을 택했지만 압도적이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도 미국 레거시 미디어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이제 각자의 스트리밍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기존 미디어들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최근 3년 내 서비스 됐습니다. 디즈니+, 애플TV+, 파라마운트+, CNN+, 디스커버리+ 등이 2019년 이후 잇달아 런칭됐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처음부터 오리지널 전략을 택한 곳은 단 3곳에 불과했습니다. CNN+, ESPN+, FOX NATION(폭스의 뉴스 스트리밍, 월 5.99달러)만이 시작 초기 기존 TV모델과의 충돌을 피해 ‘스트리밍 오리지널’ 앞세웠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브랜드나 장르 팬들을 위해 TV에서 없는 새로운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른바 신규 서비스의 핵심 사업 모델 침해, 자기 시장 잠식(Brand cannibalism)이 없었던 겁니다. CNN+는 오리지널 편성 시간마저 케이블TV뉴스의 황금 시간이 아닌 오전과 오후에 집중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최근 한 기사에서 “미디어 기업들의 자기 시장 잠식은 오디언스를 떠나가게 했고 방송사들의 수익에도 악영향을 줬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 가격은 올리고 공급은 줄이고]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유료 방송 플랫폼들은 남아있는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계속해 이용 요금을 인상했습니다. 그러나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에 서비스 되는 신작 콘텐츠는 계속 줄었습니다. 2016년과 2021년 케이블TV(미국)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공급 개수를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최근 5년 사이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에 투입되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크게 늘었습니다. 가입자가 늘어났고 넷플릭스는 엄청난 콘텐츠 수급 비용을 투입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작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등 해외에서 제작되는 콘텐츠도 대거 투입됐습니다.
5년 사이 미국 케이블TV 가입 고객이 1,000만 명 가까이 감소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볼 것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만 높이는 사업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구독자는 없습니다.
수세에 몰린 유료 방송들은 악수를 뒀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콘텐츠 거래의 기본 원칙(유료 방송 1차 방송 후 스트리밍 이동)도 어겼습니다. 최근에도 파라마운트의 최대 TV히트작 중 하나인 ‘엘로우스톤(Yellowstone)’ 숙려기간 없이 스트리밍에 바로 이동했습니다.
유료 방송 구독자들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거 TV의 모든 콘텐츠를 고정 가격에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트리밍 아니면 이런 즐거움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케이블TV에 남아있길 원하는 구독자들의 의지는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케이블TV 프라임 타임 시청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볼 것이 없으니 실시간으로 TV 앞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레거시 미디어들이 ‘오리지널’ 아닌 ‘독점 유통 전략’을 수년 간 고수한 것이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독점 유통의 경쟁력은 금방 공격 받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뉴스 장르에도 이 원칙은 적용됩니다.
[CNN+를 위한 변명]
CNN의 유료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월 5.99달러)는 고전 중입니다. 지난 3월 29일 런칭했지만 첫 2주 일 평균 이용자가 만 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CNN의 급격한 시청률 하락을 경험한 후 스트리밍 서비스로 급격히 시선을 돌린 CNN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수치입니다. 그러나 CNN의 대변인은 “아직 시작 2주에 불과하다”고 미래 성공에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런 부진은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공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재였습니다. 디즈니가 첫 날 1,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특히, 회의론자들은 CNN이 CNN+에 3억 달러(3,6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CNN이 결국 CNN+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늘어놓고 있습니다.
CNN은 CNN+에 대한 정확한 구독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CNN의 모회사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의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는 지난 2월 인터뷰에서 “CNN+의 성과를 본 뒤 다음 움직임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CNN+가 HBO MAX와 디스커버리+ 등 워너의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와 묶음 상품(혹은 통합)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WBD는 이미 HBO MAX와 디스커버리+를 합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 악시오스(AXIOS)는 4월 12일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가 향후 CNN+에 대한 투자를 감축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 오는 5월 1일 CNN의 새로운 CEO 크리스 리치트(Chris Licht)가 부임하면 새로운 결론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CNN+은 유료 방송 경쟁 원칙 관점에서 시작이 좋았다는 겁니다.
자기 잠식을 막으려는 CNN의 오리지널 뉴스 전략은 힘들지만 값진 성공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