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4)
미국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Nielsen)이 98년 역사상 처음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방송된 인기작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2020년 결과인데 상상하신 그대로 일까요. 넷플릭스의 <퀸스 갬릿 The Queen’s Gambit>이나 <노멀 피플 Normal People>을 꼽았다면 오답입니다. 저 역시 이 두 작품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20년 전에 열광한 미국인들, 지상파 과거 작품 인기]
닐슨(Nielsen>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스트리머들(Streamers)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 1~3위는바로 <오피스 The Office>,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였습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첫 방송된 지 10년 이상 된 미국 지상파 방송사의 구작이라는 것.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방송되며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힘들어하던 미국인들을 위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어떤 작품일 까요. <프로즌 II>였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Disney+)에 서비스된 영향이 컸습니다. 스트리밍 오리지널 작품 중엔 넷플릭스의 범죄 스릴러 <오자크Ozark>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디즈니+의 최고 인기작인 <만달로리언 The Mandalorian>은 2억6,00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해 4위에 올랐습니다.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순위 집계에 전문인 닐슨이 스트리밍 서비스 작품들을 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해 주간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모아서 이번에 발표한 겁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걸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이 지표에서 알 수 있는 건 코로나바이러스와 흑인 인권 시위, 미국 대선 등으로 인한 우울함을 견디는데 큰 힘이 된 것은 드라마라는 겁니다. 그것도 노스텔지아를 생각나게 하는 과거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감안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TV(스마트TV 등)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본 가구만을 집계해 조사 한계는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PC 등 개인화 기기를 통한 시청이 제외된 겁니다. 또 조사 대상에는 넷플릭스(Netflix), 디즈니+(Disney+), 훌루(Hulu), 아마존(Amazon) 등만 포함됐습니다. 애플TV+, HBO MAX, 피콕(Peacock)은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서비스가 2020년 중간에 서비스됐기 때문인데 올해 조사에는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올해부터는 시트콤 <오피스 The Office>가 넷플릭스가 아닌 NBC유니버설의 피콕(Peacock)에서 서비스됩니다. HBO MAX역시 인기 작품인 <프렌즈 Friends>의 방영권을 넷플릭스에서 회수했습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3개 장르 드라마 1~3위]
<The Office>, <Grey’s Anatomy>, <Criminal Minds>의 1, 2, 3위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3대 장르인 직장 코미디, 의학, 범죄 드라마의 대표작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위기에는 익숙한 친구가 좋습니다. 그리고 각 시리즈마다 수 백 편의 에피소드(Episode)가 있는 롱런 작품입니다. 이들 3개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를 합치면 830편에 달합니다. 이런 볼륨이 순위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레이 아나토미>는 17번째 시즌이 아직 진행 중입니다. 닐슨의 수석 부사장 브라이언 푸어러(Brian Fuhrer)는 “이들 프로그램 시즌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시청 시간 산정에 유리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스트리밍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넷플릭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1위~3위를 모두 넷플릭스 작품이 차지했는데 이 카테고리에서 상위 10위 안에 든 넷플릭스 외 작품은 디즈니+의 <만달로리언>이 유일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아직 한국에는 소개가 안된 작품으로 영화 스타워즈의 스핀 오프 드라마입니다.
특히, 넷플릭스의 인기 다큐멘터리 <타이거킹 Tiger King>은 단 8편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당당히 10워 내(4위)를 기록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동물원을 운영하는 내용의 이 다큐멘터리를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오리지널 1위였던 <오자크> 시즌3인데 성공한 작품이라는 것을 반증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차이점입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와 방영권을 확보한 TV시리즈가 인기를 끈 반면, 디즈니는 단연 영화의 모든 수치에서 수위에 올랐습니다. 영화의 경우 상위 10편 중 7편이 뮤지컬 영화 <해밀튼 Hamilton> 등 디즈니+가 방송한 작품이었습니다. 상당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아마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아이들이 집에 있었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3편은 넷플릭스였는데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률 조사, 방송의 미래]
닐슨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률 조사는 변화한 방송 지형이 투영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동안 TV시장에선 닐슨 등의 시청률 조사 기관이 측정한 데이터들이 유통됐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각자 회사가 발표한 자료뿐이어서 공신력이 없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직 닐슨의 이 수치도 업계 표준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트리밍 사업자마다 시청률 측정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의 경우 오리지널 쇼의 시청률 데이터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란은 있습니다. 한 작품을 최소 2분 이상 본 사람을 시청자로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닐슨이 이 수치들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치가 제대로 측정 될 겁니다. 이는 광고 집행 등에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한편, 닐슨은 향후 프리미엄 VOD 시청률도 측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프리미엄 VOD(Premium VOD)는 TVOD(Theatrical Video On-Demand)로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첫 공개되는 극장 개봉 규모의 영화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확산된 모델입니다. 스튜디오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영화를 개봉하면서 별도 과금을 하기도 합니다. 닐슨의 TVOD 시청률 측정 서비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지, 즉 영화 개봉 플랫폼으로서의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치를 확인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이와 함께 과거 극장 개봉 시절엔 못했던 성별 연령별, 시청 습관 별 영화 소비 형태 조사도 가능해집니다. 이 데이터를 이용,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입장에선 적어도 ‘시장 실패’가 없는 콘텐트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수치를 이용하면, 소비자들의 ‘극장 방문 의지’가 언제쯤 살아날 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별 콘텐트 공급 전략도 세울 수 있습니다.
미국 내 OTT 사용 가능(스마트TV보유 등) 가구 중 실제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고 있는 가구는 전체의 23%에 달합니다. 다섯 집 중 1집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고 있다는 겁니다. 1년 전 21%에 비해 2%포인트 정도 오른 수치입니다. 때문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중간 매개체 없이 자신들의 콘텐트를 바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시장 경쟁 구도가 완전히 바뀌는 겁니다.
현재 한국은 아직 극장을 뛰어넘어 스트리밍 서비스로 직행하는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미국처럼 극장을 완전 폐쇄하지 않은데다, 2~3개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수익 확보를 위한 적정 수준의 관객 규모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극장을 떠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기는 순간, 한국 영화 관객도 국산 스트리밍 서비스에 정착할 수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