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에서만 중요해진 뉴스. '중립지역으로 가는 미국 뉴스룸'
뉴스 프로그램의 양극화로 광고주들의 외면 이어지자, 보다 연성화되고 있는 미국 뉴스룸. 과거 뉴스는 화제를 몰고 왔지만 그것도 옛말. 결국 뉴스룸들은 광고를 위해 정치보다 난민을 취재하러 나서. CNN의 '홀스토리'는 지금을 방영하는 뉴스
미국 케이블TV 뉴스 CNN이 올들어(2023년) 가장 논란이 된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CNN에 엄청난 공격을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초청해 타운홀 미팅 프로그램을 진행한 겁니다. 2023년 5월 6일 진행된 이 방송은 시청자 수 330만 명의 큰 성공을 거뒀지만 내부 반발에 이어지는 등 논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25세~45세 78만 명)
프로그램은 엉망진창이였습니다.
앵커 케이틀린 콜린스(Kaitlan Collins)는 거듭 사실 확인 요청을 했지만 방송 내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정확한 주장으로 시청자들을 혼란케 했습니다.(4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트럼프에 시달린 콜린스는 오후 CNN프라임타임 앵커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CNN CEO 크리스 리히트는 이 방송 이후 직원들에게 변명하는 자리까지 가졌야 했습니다. 리히트 CEO는 트럼프를 취재하는 것이 힘들고 어수선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우리는 그로부터 답을 끌어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동의하지 못했고 일부는 원색적인 욕도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가 CNN에 등판한 이유는 2024년 선거에 앞서 이슈몰이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거철은 미국 뉴스들의 최고 호항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 질 수록 유권자들은 CNN이나 FOX뉴스와 같은 뉴스 채널을 많이 봅니다. 또 정치인들의 방송 출연 빈도가 높아지면서 시청률도 높습니다.
올해 선거 이벤트는 8월에 본격 시작될 전망입니다. 폭스 뉴스채널은 오는 8월 공화당 첫 번째 전당대회 토론(Republican Party’s first primary debate)도 중계합니다.
이런 정치 이벤트들은 많은 광고를 몰고 왔습니다. 미국 지역 미디어들이 이런 정치광고로 사업을 유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는 미국 광고주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청률은 높아지지만 광고는 되지 않는 뉴스 프로그램이 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이 뉴스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 방송 프로그램에도 이런 트렌드가 반영되면서 닥처올 후폭풍을 우려해서입니다.
특정 채널이나 프로그램에 광고를 할 경우 기업들도 좌파냐 우퍄나 하는 논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 정치 방송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더 심해지는 모양새입니다.
광고주들은 복잡하고 논란적인 이슈 옆에서 광고를 하기 싫어합니다.
이제 마케팅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총기 난사 사건, 기후 변화 등의 보도 근처에 자신들의 광고를 배치하는 것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광고주들의 두려움은 예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때문에 미국 뉴스 방송사 직원들은 긴급 속보나 대행 재난이 발생했을때 현재 예정된 광고를 빼고 프로그램을 긴급편성하는데 단련됐습니다. 911사태가 발생했을때도, 주요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광고 편성을 중단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3억 3,120만 달러의 광고 손실이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직접 광고 의지는 아직 높은 편입니다.
뉴스가 여전히 화제성을 몰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들 뉴스 스폰서들은 방송사가 뉴스 광고 시간을 전통적인 광고로 채울 수 없을 때 나타납니다. FOX 코퍼레이션 대표인 라클란 머독(Lachlan Murdoch)은 투자자 대상 발표에서 “폭스뉴스의 문제가 아니지만 (광고 감소는) 우리 상품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 그룹에만 중요해진 ‘방송뉴스’]
미국 뉴스 프로그램 지형은 크게 변했습니다.
뉴스 프로그램의 중요성은 (시장이 아닌) 메이저 미디어 그룹 내에서만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자, 케이블이나 지상파 방송이 광고주와 오디언스를 끌어올 수 있는 장르가 뉴스와 스포츠였습니다.
한국은 아니지만 미국은 뉴스 채널이 아직 모회사에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폭스 코퍼레이션의 계열사 폭스 뉴스 채널(Fox News Channel)은 상당한 영업 이익을 모회사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에 속해 있는 CNN은 한 때 타임워너의 매출 중 4분의 1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많은 돈을 워너에 벌어주고 있습니다.
뉴스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미디어 기업들도 5월 광고주 설명회에서 뉴스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습니다. 스튜디오와 스테이션이 분리되는 시기, 뉴스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드라마 등은 스트리밍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반면, 뉴스는 여전히 그들이 주도한다는 전략입니다.
폭스 뉴스와 MSNBC, CNN 등 미국 뉴스 보도채널들은 업프런트 행사에서 ‘선거 관련 프로그램을 대거 선보였습니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의 CBS, 디즈니의 ABC, NBC유니버설의 NBC뉴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폭스 뉴스는 2023년 5월 15일 열린 업프런트에서 폭스 뉴스가 지난 2년 간 20개가 넘는 뉴스 프로그램을 런칭했고 정치, 사회 등 하드 뉴스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생활 뉴스 40%가 넘게 방송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폭스는 폭스 네이션(스트리밍), 폭스 웨더(FOX Weather) 등 스트리밍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뉴스룸(America’s Newsroom)’을 공동 진행하고 있는 빌 헴머(Hemmer)와 다나 레피노(Dana Perino)’의 시청률을 자랑하면서 폭스는 공화당 토론회 등 선거 관련 프로그램을 대거 소개했습니다. 또 2018년에 런칭한 폭스의 구독 스트리밍 뉴스 ‘폭스 네이션(Fox Nation)’은 케빈 코스트너, 케슬리 그래머 등 할리우드 A급 스타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미국 대표 지역 미디어 그룹인 넥스타(Nexstar)는 자신들이 런칭한 내셔널 뉴스 ‘뉴스 네이션(NewsNation)’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습니다. 전 CNN앵커 크리스 쿠오모와 엘리자베스 바가스( Elizabeth Vargas) 등이 진행하는 뉴스가 대표 상품입니다.
[시대에 뒤쳐진 뉴스 프로그램의 미래]
그러나 이들 뉴스 프로그램들은 미래는 밝지만은 않습니다.
경기 악화와 시대를 읽지 못하는 고집때문입니다. 이제 뉴스를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습니다. 맹목적 버티컬 뉴스는 펴보지도 못하고 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고퀄리티 뉴스는 수요자가 원하지 않습니다.
카간(Kagan)에 따르면 CNN 2023년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5% 하락 5억 6,200만 달러로 예상됩니다. 폭스 뉴스채널 역시, 2023년 광고 매출이 전년 보다 8.2% 감소한 9억 6,690만 달러로 전망되는데 2022년 10억 5,000만 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습니다. 이외 폭스 비즈니스, CNBC 등 경제 채널들도 매출액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오직 MSNBC만이 전년 대비 상승된 수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카간은 NBC유니버셜의 MSNBC 광고 매출이 1년 전 5억 2,980만 달러에서 5억 9,600만 달러로 12.5%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폭스 뉴스가 경쟁사에 비해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터커 카슨이 떠난 뒤 프라임 타임 시청률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CNN은 2020년 선거 이후 시청률 하락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광고 판매 임원들도 회의적입니다.
폭스는 이미 정치 광고가 실적에 반영됐고 일찍 유입됐다는 입장입니다. 폭스 뉴스 미디어의 광고 담당 판매 수석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 제프 콜린스(Jeff Collins)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정치 광고 시즌이 빨리 시작된 느낌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확실히 더 공격적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존 스타인로프(Jon Steinlauf)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미국 광고 판매 담당 대표(chief U.S. advertising sales officer)는 “올해 우리는 더 많은 지출이 예상된다”며 “CNN은 최근 몇 달 동안 프로그램을 재조정했으며 모두를 위한 안전한 공간(safe space for all voices)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뉴스는 대립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뉴스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필요할까.
뉴스 프로그램이 큰 시청률과 인기를 얻으려면 ‘대립적이어야 한다(they need to be confrontational)’는 건 기본 원칙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보다 광고주의 불안이 먼저입니다. 뉴스의 매체 경쟁력이 약해졌기에 어쩔 수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미국 뉴스룸은 오디언스와 광고주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일부는 고객 친화적이라는 이름으로 뉴스 연성화를 택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아담 모나코(Adam Monaco) 광고 판매 부대표(vice president)는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전달해야 할 하드 뉴스 스토리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엔터테인먼트,라이프스타일, 스포츠 등의 콘텐츠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미나(Joe Mina) 파라마운트 글로벌 광고 담당 선임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광고주들은 여행, 요리, 날씨 프로그램 등에 많이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고객 친화적인 환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논란적인 포맷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CNN이 3월 시작한 일요일 뉴스 탐사보도 프로그램 ‘홀 스토리(The Whole Story)’가 대표적입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깊게 들어가는(documentary-style deep dive) 콘셉트 프로그램입니다. 남아메리카 이민자 문제나 환경 변화 해법 등 우리가 모두 같이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주로 다룹니다.
뉴스 매거진 행태를 따르지만 하루에 하나의 주제만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CNN은 이 프로그램을 거의 1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리히트 CEO는 처음 1년 전 업프런트에서 일요일 프로그램에 ‘프리미엄 프로그램 불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홀스토리는 정말 홀 스토리입니다.)
전 백악관 대변인 젠 프사키(Jen Psaki)가 진행하는 MSNBC의 새로운 주말 인터뷰 프로그램은 공화와 민주 양당, 우파와 좌파 모두 인터뷰하는 롱 폼 인터뷰 컨셉트의 프로그램입니다.
폭스 뉴스 역시, 우파 진영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넘어서고 싶어 합니다.
업프런트에서도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를 대거 확장해 광고주와 협찬주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카간에 따르면 폭스 뉴스는 2022년 17억 달러 광고 매출을 기록했고 프로그램 사용료로 18억 2,0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아울러 폭스 뉴스는 우파 앵커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라운드 테이블 성격의 뉴스 토크쇼를 런칭했습니다. 인기 뉴스쇼 ‘더파이브’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광고주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 다가가 위해 뉴스가 필요한가, 아니면 단지 안전한 뉴스가 필요한가?
방향을 결정하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는 두 가지 역할 모두를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