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가치'를 몰랐던 CNN CEO의 퇴진...뉴스 플랫폼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2022년 5월 부임했던 아침 뉴스 프로듀서 출신 CNN CEO 크리스 리히트 1년 만에 퇴진. 시청률 하락과 직원들의 신뢰 급강하. 매출 급락이 원인. 포스트 리히트 이후 뉴스 가치 재고와 뉴스 플랫폼 전략을 다시 고민해하는 그들
시청률이 추락하고 수익은 감소하고 톱스타는 회사를 떠났습니다. 급기야 직원들의 신뢰도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글로벌 1위 뉴스미디어 CNN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CNN의 지난해 수익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10억 달러 이하로 떨어졌고 2023년 4월 간판 스타였던 돈 레몬(Don Lemon)도 회사를 나갔습니다. 개인 발언이 문제가 됐지만 CNN입장에서는 스타 한 명이 회사를 떠난 손실이었습니다.
[CEO 리스크에서 시작된 위기 본체를 흔들다]
현재 CNN 위기에 가장 큰 원인은 CEO 크리스 리히트(Chris Licht)였습니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에 부임했지만 리히트의 1년은시청률 하락, 비자격자 채용, 직원들이 반발 등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리히트의 가장 큰 패착은 연이은 인사 실패와 디지털 뉴스 투자 부재입니다.
퇴진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리히트가 모회사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 데이비드 자슬라브 CEO의 최측근인 데이비드 리비(David Leavy)를 최고 운영 책임자에 임명한 겁니다.
클린턴 행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리비는 디스커버리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뉴스 비즈니스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잘못된 인사는 더 큰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여기에 얼마 전 디 애틀랜틱(The Atlantic) 언론 인터뷰에서 리히트가 CNN의 기자들을 비난한 것은 갈등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리히트는 CNN직원들과 교류가 거의 없으며 특히, 자신과 전임 CEO였던 제프 저커(Zeff Zucker)를 비교하는 언급에 상당히 짜증을 냈다고 알려졌습니다.
심각한 분위기를 인지한 리히트는 2023년 6월 5일 편집인 회의를 열고 직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부 갈등은 더 격화됐고 CNN의 모회사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는 결국 크리스 리히트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6월 7일(한국시간) 공식 밝혔습니다.
자슬라브 CEO는 보도자료에서 “CNN을 이끄는 일은 절대 쉬운 업무가 아니다. 특히, 혼란과 전환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고 리히트가 겪은 어려움이 개인적인 문제만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CNN은 리히트의 후임에 최고 인사 담당자 에이미 엔텔리스(Amy Entelis), 편성책임자 버지니아 모슬리(Virginia Moseley), 미국 프로그램 담당 에릭 쉐링(Eric Sherling) 등 3명을 대행으로 임명했습니다. 모두 전임자 제프 저커와 함께 일했던 인사들입니다.
CNN의 혼란에 일부 책임이 있는 데이비드 리비는 비즈니스에 전담하도록 역할을 조정했습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크리스 코라티 켈리(Kris Coratti Kelly)는 7월에 사직키로 했다고 CNN은 밝혔습니다.
불안한 삼두 체제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슬라브는 직원들에게 CEO를 선임하는데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CEO부임 후 뉴스 프로그램 시청률 급격히 하락]
리히트는 2022년 5월 회사 부임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회사를 불명예스럽게 그만두게 됐습니다.
그의 퇴진은 개인 역량 부족이 가장 큰 이유지만, 스트리밍으로 전환되는 혼란의 시기, 리더의 중요성에 대한 더 큰 인식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입니다.
리히트가 CEO를 맡은 이후, CNN 시청률은 곤두박질쳤습니다.
폭스 뉴스에 이어 2위에 고정된데 이어 지난 몇 개월 간은 뉴스맥스(NewsMAX)와 같은 극우 채널도 CNN 시청자수의 몇 배를 기록했습니다.
한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리히트는 CNN의 오후 9시 뉴스 앵커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9시는 케이블TV뉴스 미디어의 심장과 같은 시간대입니다.
그러나 리히트가 판단을 유보하는 사이 시청률은 추락했습니다.
급하게 인기 앵커 제이크 태퍼(Jake Tapper)를 9시에 투입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2월 리히트 CEO는 포맷을 바꿔 9시 타운홀 스타일 프로그램을 런칭했습니다. 에피소드 당 하나의 주제와 이목을 끄는 인터뷰를 담은 포맷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도 결과는 나빴습니다.
CNN는 지난 20년 간 역대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2023년 3월 초 인기 앵커 CNN 앤더슨 쿠퍼의 오후 8시 프로그램은 58만 4,000명의 시청자수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프로그램인 9시 스페셜은 이와 30% 차이가 나 40만 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오후 12시나 오후 1시 CNN의 스트레이트 낮시간 뉴스가 저녁 뉴스에 비해 더 많은 오디언스를 끌기도 했습니다.
결국 리히트는 오후 9시에 리베로 시스템까지 도입했습니다. 여러 명의 앵커가 돌아가면서 방송을 맡는 컨셉트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CNN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리히트는 결국 오후 9시에 케이틀란 콜린스(Kaitlan Collins)를 고정 배치했습니다.
일부 게스트가 나올 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리히트 시절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CNN 아침 쇼를 개편한 것이었습니다.
돈 레몬과 파피 할로우, 백악관 출입기자 케이틀린 콜린스 등이 진행하는 모닝쇼였습니다. (사실 크리스 리히트는 CEO보다 아침 방송 전문가입니다.)
아침뉴스 ‘CNN 디스 모닝(CNN This Morning)’에서 CNN은 3명의 앵커체제를 도입했습니다. 돈 레몬, 파피 할로우, 30살의 케이틀린 콜린스 등입니다.
하지만, 시청률은 좋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진행자 돈 레몬은 공화당 예비 대선 주자 니키 헤릴리에게 ‘그녀의 전성기가 아니다’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했습니다.
결국 리히트는 레몬을 해고했고 몇 주 뒤 리히트는 콜린스를 오후 9시에 뉴스 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시작 몇 달 만에 모닝쇼가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겁니다.
때문에 CEO인 리히트가 아침 프로그램 개편에나(?) 신경쓰면서 사람들은 그가 “프로그램 프로듀서이지 CEO를 맡을 역량은 되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했습니다.
BBC, NBC유니버셜 등 글로벌 뉴스 미디어와 싸워야 하는데 그의 스몰볼은 뉴스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리히트…인력 유출]
리히트가 CEO를 맡은 이후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가 보도 프로그램이나 인력들을 단지 교양 프로그램 방송 진행자 중 하나로 인식하고 개편 작업을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존심이 매우 강한 저널리스트와 뉴스 전략 담당자들 상당수가 회사를 나갔습니다.
문제는 상당수 인재들이 MSNBC, CBS, ABC뉴스와 같은 경쟁사로 이동했다는 겁니다.
CBS뉴스는 2023년 5월 31일 CNN인기 진행자 리사 링(Lisa Ling)을 영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리사 링은 한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디스 이즈 라이프(This Is Life)’을 진행했던 유명인입니다. 그러나 비용 절감으로 이 프로그램은 폐지됐습니다.
ABC뉴스 역시, CNN 정치 에디터 출신 브룩 보워를 영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기 앵커였던 아나 카브레나)Ana Cabrera) 역시, 지난해 말 CNN을 떠난 이후 MSNBC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CNN이 비용 절감에 들어가면서 앵커들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NN의 메인뉴스 전략 등 글로벌 1위 뉴스 미디어를 만들었던 뉴스 전략 책임자들도 리히트 이후 회사를 대거 떠나고 있습니다.
애비 필립, 밴 존스 등 CNN의 간판 패널을 발굴했던 레베카 쿠틀러(Rebecca Kutler)는 2022년 6월 CNN을 떠난 지 3개월 뒤 MSNBC의 콘텐츠 전략 담당 부사장에 올랐습니다. CNN+를 위한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데이비드 P.겔라스(David.P. Gellas)도 MSBC의 정치 토크 프로그램 ‘밋더프레스(Meet The Press)’의 수석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리히트 이후, 매출도 급락한 CNN]
리히트 CEO 부임 이전 CNN은 최근 몇 년 간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2022년 CNN은 7억 5,000만 달러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전 해 12억 5,000만 달러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입니다. 카간(Kagan)은 2023년 CNN광고 매출도 전년 대비 5% 떨어진 5억 6,200만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용 절감도 기자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디스커버리는 CNN 인수 이후 디지털 투자를 축소하고 스트리밍 뉴스 플랫폼 CNN+를 중단했습니다. 상당수 디지털 뉴스 전문가가 이 때 회사를 떠났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타운홀 프로그램 출연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리히트가 트럼프 CNN출연의 최종 결정자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리히트 CEO는 방송에 출연하는 정치 평론가와 뉴스메이커 등에 다양한 시각을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기존 진보에 기울어져있던 CNN뉴스를 중립 지대로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트럼프 출연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CNN을 이용했지만 CNN은 그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송 내내 가짜 뉴스를 퍼트렸고 진행자였던 케이틀린 콜린스를 ‘고약한 여자(nasty woman)’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출연은 CNN 내외부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Christiane Amanpour)와 같은 유명앵커는 외부 토론회에서 회사의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아만푸어는 뉴스 업계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그녀는 한 포럼에서 “리히트의 결정에 전체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기자들의 신뢰까지 잃은 뉴스 CEO]
이런 어려움 속, 리히트는 기자들의 신뢰까지 잃었습니다. 그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기자가 거의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리히트는 처음 부임하면서 뉴스룸과 상당히 떨어진 본사 22층에 사무실을 잡았습니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리히트가 보도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전임자인 제프 저커는 보도와 거의 같은 층에 위치하면서 수시로 연락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부 직원들은 리히트의 디 애틀랜틱 인터뷰에 큰 실망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인터뷰에 리히트가 CNN의 코로나바이러스 취재 보도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리히트는 6월 5일 내부 미팅 이후 리히트는 자신의 사무실을 뉴스룸과 가까운 저층으로 옮기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리히트는 회사 미팅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회사 보도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리히트가 회사를 떠나기로 하면서 모두 백지화됐습니다.
[CNN의 미래는]
변화를 위해 CNN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뉴스 미디어의 최대 매출 시기이자 시청률 대목인 2024년 대통령 선거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2024년 대선 열기 속 CNN은 새로운 광고주와 스폰서를 최대한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 전환도 마찬가지입니다.
NN이 주춤하는 NBC 등의 디지털 뉴스 전환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게다가 매년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케이블TV를 떠나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CNN의 오후 9시 뉴스 개편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하는 건 직원들의 신뢰 회복과 CNN의 뉴스 방향성입니다.
디지털에 앞서 오디언스들에게 CNN을 봐야하는 이유를 증명해야합니다.
CNN은 자슬라브 부임 이후 중도로 가고 있지만 ‘중도’에서는 시청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특정 진영을 더 많이 대변하는 뉴스의 경우 광고주들의 부담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폭스의 1위 진행자 터커 카슨(Tucker Carlson)이 트위터로 자리를 옮겼듯, 정파 뉴스의 중심은 TV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 서비스입니다.
https://twitter.com/TuckerCarlson/status/1666203439146172419
여기서 CNN과 레거시 미디어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진영에서 서자니 광고주가 빠지고 광고주를 잡자니 시청자들의 이탈합니다.
그래서 CNN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이슈 현장 보도(창업 초기처럼 현장으로 가는)와 디지털 뉴스 플랫폼 전략으로 보입니다.
단편적인 뉴스 보도의 변화와 버티컬 뉴스 변동으로는 시청자들이 그들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이는 CNN뿐만 아니라 모든 레거시 미디어들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물론 2024년 미 대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CEO가 바뀐 CNN은 많은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진보 진행 및 의견 뉴스에서 중도, 팩트 뉴스로의 전환을 추진했던 CNN이 또 다른 선택을 할지에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