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 Media]적에게서 역사를 기억받다. 비디오 대여점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블록버스터 The Last Blockbuster>
한 때 9,000여 개의 매장을 가졌던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 넷플릭스가 자신들을 사달라고 하는 인수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강했지만,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마지막 매장만 남아. 반면 넷플릭스는 역대 최대 구독자 2억 명을 넘기며 승승장구. 역사의 이이러니를 담은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 다큐멘터리 넷플릭스에서 공개.
아마 X세대 이전을 사신 분들이라면, 동네에 하나씩 있던 비디오 가게를 기억하실 겁니다. 신작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무협 영화를 기다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 비디오 가게를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휴대 전화도 없던 시절, 인기 작품을 빨리 보기 위해선 부지런함이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원하는 비디오를 그 모습을 여전히 기억 합니다. 신작 비디오 테이프의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와 검은 봉지 안에서 테이프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상상력을 더 자극했습니다. 일부 비디오 가게는 프랜차이즈로도 발전(으뜸과 버금)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2000년 초반 기사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30년 전 추억은 기억과 함께 희미해져 갑니다.
미국인들에게도 우리와 유사한 기억을 불러오는 비디오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블록버스터(Blockbuster)입니다. 중년 이상의 나이가 든 미국인들도 주말 저녁 가족과 함께 블록버스터에서 빌린 영화로 시간을 보냈던 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연체료(Late Fee)를 내지 않기 위해 졸린 눈으로 비디오를 다 보던 경험을 가진 이들도 많습니다. 미국의 비디오 연체료를 꽤 비싸 40달러 가까이 됐습니다. 참고로 비디오 대여료는 1주일에 7달러였습니다.
블록버스터는 한 때 대단한 회사였습니다. 넷플릭스(Netflix) 창업주의 리드 헤이스팅스는 지난 1997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와 사업 구조가 유사했습니다. 비디오 대여 사업입니다. 그러나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블록버스터와 경쟁이 버거워 헤이스팅스는 공식적으로 블록버스터에서 회사를 사라고 제안했습니다. 5,000만 달러에 말입니다. 당시에는 블록버스터 매장이 미국 전역에 9,000개 가 넘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블록버스터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 당시에는 재고의 가치도 없었던 이 결정이 나중에는 글로벌 미디어 업계를 바꿔놓은 놓습니다. 비디오 가게가 아닌 우편을 통한 DVD배송으로 블록버스터를 긴장시키는 넷플릭스는 결국, 스트리밍 서비스로 미디어 시장의 판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현재 2억 명이 넘는 넷플릭스의 이 역사는 각종 기사 및 책으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패자인 블록버스터의 퇴로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을 블록버스터가 완전히 망한 줄 알고 있지만, 미국에는 아직 매장이 존재합니다. 오레곤 벤드(Bend)라는 곳에는 블록버스터의 마지막 매장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디오 대여와 함께 추억 여행을 오는 중년들을 맞이하는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에게 매각을 제안한 지 21년 뒤, 블록버스터가 파산한 지(2010년) 11년 뒤, 이 회사가 다시 우리에게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마지막 블록버스터 The Last Blockbuster>(넷플릭스 2021.03)를 통해서입니다. 자신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벤처기업이 이제 그들의 과거를 저장한 기억 장소가 됐습니다.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블록버스터 마지막 매장의 매니저(샌디 하딩)를 따라 갑니다. 그녀가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수거함에서 밤사이 반납된 비디오를 손질하고 다시 케이스에 넣는 일입니다. 이후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비디오 가게이니 비디오가 준비되어야 영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녀는 2004년부터 일했는데, 그 당시 미국에선 9,000개 블록버스터 매장이 있었습니다. 2010년 지금은 이 매장 하나가 남았습니다.
<마지막 블록버스터>는 케빈 스미스(유명 개그맨) 등 이젠 중년이 된 이들이 과거 블록버스터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내면서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빌릴 비디오를 두고 누나와 싸웠던 이야기,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를 빌렸던 이야기, 블록버스터가 만들었던 영화제 등 블록버스터에 얽힌 자신의 과거를 통해 이 회사를 회상합니다. 심지어 블록버스터는 마이애미에 테마파크 건설도 구상합니다. 역사가 있다는 것은 오래됐다는 말이지만, 브랜드와 함께 늙어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블록버스터에서 단 하나의 비디오를 빌린 적이 없는 우리에게도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 있는 이유는 ‘기업의 흥망성쇄’가 잘 정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1985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데이비드 쿡(David Cook)의 의해 시작된 이 회사는 설립 당시에만해도 혁신적 기업이었습니다. 남들과 달리 고객 자료를 SW를 통해 데이터베이스화 했고(데이비드 쿡이 SW엔지니어였다.)
매장 진열대를 설치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때문에 도난 사고도 있었지만, 전체 매출 증가에 비해선 미미했습니다. 이런 성장 과정이 <마지막 블록버스터>에 잘 묘사돼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 당시 매 17시간 마다 새로운 매장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재앙의 시작은 지난 1994년 블록버스터가 바이어컴(지금의 ViacomCBS)에 84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시작됩니다. 바이어컴의 섬너 레드스톤은 블록버스터를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창구로만 여기고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회사는 2004년 바이어컴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하지만, 이 10년은 블록버스터에겐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케이블TV가 전성기를 맞았고 DVD의 등장, 경쟁사인 넷플릭스와 레드박스가 우편을 통한 DVD배달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블록버스터를 괴롭힐 때였습니다. 넷플릭스가 매각을 요청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제안은 앞서 언급했듯 바로 거절 당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회사 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DVD가격도 급격히 떨어져 월마트가 새로운 영상물 유통 창구가 됐습니다. 버틸 힘이 없어진 블록버스터는 연체료를 없애는 강공을 펼쳤지만 이미 시장은 떠난 이후였습니다.
2005년 행동주의 펀드 칼 아이칸이 경영에 참견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는 더 꼬입니다. 그들은 회사에 투자는 하지 않고 수익을 위해 자산 등을 매각하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는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구독자를 확대하고 있을 때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한 때 블록버스터의 CFO로 일했던 톰 케이시“다들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 때문에 망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넷플릭스를 위기를 넘어설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고 블록버스터는 그러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던 중 2008년 모두가 기억하는 리먼 브러더스 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집니다.
이후 블록버스터의 역사는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계속 하락의 길을 겪었습니다. 2010년 파산 후 위성 방송 디시 네트워크가 인수했지만 결국 새로운 생존의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더 라스트 블록버스터>는 30여 년에 걸친 한 기업의 탄생과 몰락을 개인의 인생, 그리고 역사적 사건 들을 교묘하게 연결시키며 매우 흥미롭게 기록합니다. 블록버스터를 비록 모르는 사람들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본인들의 과거 향수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을 없앤 건 우리가 아니라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지 모릅니다. 다들 한번 보시면 좋을 작품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3월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지역지인 벤드 블레틴 리포트에 따르면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블록버스터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역사는 가고 추억만 남습니다.
미디어와 기업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라면, 결정의 순간에 결정하지 못한 기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출발선에서 훨씬 빨리 달리고 넷플릭스보다 강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달릴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숨이 차는데도(자금) 멈추지 못했습니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 말입니다. 넷플릭스는 늦게 출발했지만 지름길을 알았습니다. 물론 넷플릭스가 항상 이길 것이라는 건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