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 Media]‘컬러TV의 세계 수도가 바뀐 날’ 라디오가 라디오를 버리다.
4월 1일은 RCA(톰슨)가 미국 TV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한 날.... 최근 미국 2위 라디오 방송국 엔터컴, 회사 이름에서 라디오를 삭제, 오데이시(Audacy)로 변경, 팟캐스트 등 Z세대를 위한 오디오 콘텐트에 주력.. 새로운 물결이 레거시 방송을 밀어내는 미국
(2021-04-01)
우리가 RCA라고 알고 있는 미국 TV제조사는 지난 1919년 설립 당시, 라디오를 먼저 제조했습니다. 그래서 그 약자도 The Radio Corporation of America입니다. RCA는 지난 1940년 메인 제조 시설을 뉴저지 캠든에서 이 곳 인디애나 블루밍턴(Bloomington)으로 이전했습니다. 수요가 늘자, 보다 더 크고 한적한 공장이 필요했습니다
블루밍턴으로 제조 시설을 옮긴 이후 1949년 9월 6일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TV방송이 시작되면서 라디오가 아닌 텔레비전 제조 시설로 탈바꿈한 겁니다. 이후 50년 동안 블루밍턴은 ‘TV제조의 메카’로 불리며 승승장구했습니다.
RCA의 주인이 GE에서 프랑스 톰슨(Thomson SA)으로 바뀌었지만, 8,000여 명의 직원을 고용(블루밍턴 노동력의 2%)하며 스스로를 ‘컬러TV의 세계 수도(Color Television Capital of the World)’로 부를 정도로 자부심도 컸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찾아옵니다. 미국 노동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제조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1968년 2,000명 이상의 직원이 정리해고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1986년 톰슨은 더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멕시코로 공장 이전을 서서히 준비합니다.
결국 23년 전 오늘, 1998년 4월 1일 블루밍턴 TV제조 공장은 가동된 지 50년 만에 문을 닫습니다. 그후 이 부지는 제약회사 공장으로 활용되다, 지금은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시민 공원 앞 벽화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한 때 TV를 실은 차로 가득 찼던 앞마당도 이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기술 발전과 시장 수요 변화가 만든 TV의 몰락 역사입니다.
미국에서 또 다른 전설이 저물었습니다. 최근 미국 2위 라디오 방송사가 ‘라디오(Radio)’를 버렸습니다. 라디오 방송 인터컴(Entercom Communications Corp.)은 사명을 오데이시(Audacy)로 변경했습니다. 오디오북과 팟캐스트에 익숙한 Z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입니다. Z세대는 광고의 주 타깃층이기도 합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이름도 라디오닷컴에서 오데이시로 바뀝니다. 브랜드 정체성과 리디자인은 브랜드 관련 대기업 LANDOR & FITCH가 맡았습니다. 이 회사 주식도 오는 4월 9일부터 AUD라는 이름으로 거래됩니다.
지난 1968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설립된 엔터컴 커뮤니케이션은 미국 48개 방송 권역에 235개 방송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이하트(iHeart)에 이어 2번 째로 라디오 방송사 개수가 많습니다. 지난 2017년 엔터컴은 CBS라디오를 인수해 지금의 규모가 됐습니다. 기업 공개는 지난 1999년에 이뤄졌습니다.
[라디오가 아닌 오디오 콘텐트 전략]
최근 몇 년 간, 엔터컴은 팟캐스트 회사들을 잇달아 인수했습니다. Cadence13, Pineapple Street Studios 등 제작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 받는 곳들입니다. 엔터컴은 라디오 플랫폼에서 벗어나 오디오 콘텐트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입니다. J.D 크롤리(J.D. Crowley) 엔터컴 디지털 최고 책임자는 “우리는 라디오를 넘어서고 있다. 더 이상 라디오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엔터컴이 라디오를 떠나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미국 라디오 시장은 수십년 간 매우 정체돼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오디오 콘텐트가 각광 받고 있지만 라디오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청취자가 고령화되고 있어 주 소비계층의 몰입도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엔터컴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였음에도 지난해 매출이 28%나 떨어졌습니다. 반면 오디오 콘텐트를 기반으로 한 팟캐스트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음성 광고도 라디오에서 “디지털”로 전환됩니다. 휴버 리서치의 미디어 애널리스트 크레이그 휴버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광고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며 “2019년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엔터컴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라디오를 넘어 오디오 콘텐트로 가고 있지만, 라디오라는 올드한 이미지 때문에 오디언스 확장이 쉽지 않았습니다. 스포티파이(Spotify)와 같은 스트리밍 오디오와 경쟁하기 위해선 새 이미지가 필요했습니다. 데이비드 필드 CEO는 “우리는 우리의 이름보다 더 생장했다”며 “더 이상 우리가 향하는 곳에 지금 이름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디오 시장 진격을 위해 엔터컴은 웹사이트(https://www.audacy.com/)과 함께 모바일 AOD 애플리케이션(Audacy)에 투자해 팟캐스트 시장에서 미래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곳에 모든 라디오 실시간 방송과 AOD, 그리고 팟캐스트 콘텐트를 함께 서비스됩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의 플랫폼 이용 변화로 인한 전환은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왜 전통 미디어에 레거시라는 말이 붙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유산이 없으면 새로운 상상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산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콘텐트입니다. TV생산이 블루밍턴에서 2000년 대 초반 멈추고 이제 더 이상 TV를 만드는 미국 브랜드가 없지만, 콘텐트 시장은 여전히 미국 스튜디오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