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플랫폼과 콘텐츠의 건전한 성장/'오징어 게임'을 오래 보고 싶다면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로쿠, 유튜브, 아마존 등 각 서비스 주체들의 분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시장 경쟁으로 고객 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를 차지하려는 미래 전쟁/미래 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방법은?
(2021-11-04)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은 스트리밍 플랫폼(로쿠, 컴캐스트 등), 스마트TV(삼성, LG 비지오), 스트리밍 서비스(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등)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들 서비스는 처음엔 하드웨어, 플랫폼, 콘텐츠 등으로 역할이 구분돼 분쟁이 없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면서 서로의 목적이 같아지고 있습니다. ‘구독자들에게 콘텐츠’를 공급하는 서비스가 그것입니다.
이제 스마트TV업체들도 플랫폼을 운영하고 플랫폼 운영자들도 스마트TV를 만듭니다. 아마존처럼 스트리밍 서비스와 스마트TV플랫폼(파이어 TV)을 동시에 운영하는 사업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삼성과 LG가 스마트TV를 통해 직접 서비스하는 무료 스트리밍 채널은 100~200여 개가 넘습니다.
결국 케이블TV사업자 컴캐스트(Comcast)도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새로운 스트리밍 TV를 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아마존도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TV ‘옴니TV’를 내놨습니다. 이에 만인의 투쟁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분쟁이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시청 데이터(Viewing data)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합니다. 광고와 구독 시장에서 모두 ‘시청률’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마존(Amazon)과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Roku)의 협상에서도 아마존은 로쿠의 구독자가 어떤 앱들을 보는지 그리고 어떤 콘텐츠를 보는 지에 대한 매우 상세한 데이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참고로 로쿠는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스트리밍 포털 혹은 플랫폼입니다. 일반 TV용 스틱 하드웨어나 스마트TV용 SW방식으로 서비스하는 데 월간 이용자만 5,500만 명입니다. 아마존은 로쿠에 구독 기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광고 기반 무료 IMDB TV’ 스트리밍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로쿠 고객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고객들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어 ‘유통’이라는 본업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로쿠는 이 제안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마존의 IMDB TV의 광고에서 발생하는 수익 배분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로쿠는 당장의 수입보다 미래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 줄(혹은 경쟁사를 키워줄)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시청 데이터가 모두 넘어갈 경우 광고 수주 능력에서 아마존이 우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향후 영업에도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로쿠와 구글 유튜브(Youtube)와의 갈등도 유사합니다.
기존 케이블TV의 온라인 버전인 유튜브TV는 로쿠에게 고객들의 시청데이터와 검색 시 유튜브 검색 결과가 상위에 노출되도록 요구했습니다. 로쿠는 당연히 거절했고 유튜브는 협상이 되지 않는다면 유튜브TV를 빼겠다는 말대신 12월 유튜브를 로쿠에서 제외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이에 로쿠는 구글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법률을 반경쟁적 행위를 하고 있다며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와 각 주 규제 기관들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문화부(DCMS)는 스트리밍 사업자들에게 영국 공영방송(PSB)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시청률 데이터를 정확히 공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TV제조사들에게 (일부는 넷플릭스 단축 버튼이 있는) PBS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해 SVOD시장에서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주문했습니다.
[로쿠의 자신감은 현재 점유율, 한국도 숙제]
어쩌면 로쿠와 유튜브, 아마존은 싸움이 되지 않는 체급입니다. 로쿠의 3분기 광고 매출이 5억 달러였지만 아마존은 3분기 전년 대비 49% 증가한 80억 달러, 유튜브는 43%가 늘어난 72억 달러의 광고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로쿠의 힘은 점유율에서 나옵니다.
디인포메이션은 리처시 회사 콘비바(Conviva)을 인용해 현재 미국 케넥티트 TV 혹은 스마트TV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의 39%를 로쿠가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로쿠에게는 질서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아마존이나 유튜브가 스마트TV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더 큰 점유율을 가지게 된다면 무게 균형추는 급격히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로쿠에 이어 2위는 아마존의 파이어TV입니다.
한국 콘텐츠를 지배하는 특징 중 하나인 투쟁성(One dominating feature of Korean content is its combativeness)
미국 스트리밍 시장 갈등은 한국 콘텐츠 사업자들에게도 같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지금은 한국 콘텐츠가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From BTS to ‘Squid Game’: How South Korea Became a Cultural Juggernaut’ 기사를 통해 한 때 자동차와 스마트폰의 나라로 알려졌던 한국이 이제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NYT는 11월 2일 기준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상위 10편 중 3편이 한국 드라마라는 데이터도 인용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한국 콘텐츠의 성공에 대해 수년 간의 노력과 상대적인 제작 자율성(중국과 일본 등에 비교해)을 꼽았습니다. 빅뱅과 소녀시대가 아시아를 지배하고 ‘가을 연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들 콘텐츠는 매우 뛰어났지만, 글로벌 관객들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습니다.
결국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만나 한국 콘텐츠는 세계로 뻣어나갔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강한 콘텐츠 심의가 작가들의 ‘스토리텔링 체력(규제를 피하고 몰입도는 높이는 방법)’을 끌어올렸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담론의 회피가 사회적 갈등 묘사를 강화했다는 분석도 의미 있습니다. 물론 100% 동의하기 어려운 분석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언제 역전될지 모릅니다. 과거 1980년~2000년을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확약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도 분석했지만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한국 콘텐츠가 단기간에 세계 중심에 서기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미디어 플랫폼을 지배하지 못한 나라의 콘텐츠가 수명을 연장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영국이 BBC의 부활을 꿈꾸고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 콘텐츠가 잘나가고 있으니 이들에게 부활이라는 의미는 ‘기울어진 땅’을 바꾸는 겁니다.
콘텐츠만 잘되면 된다는 ‘콘텐츠 지상주의’자들의 주장에 하나를 보태자면 플랫폼과의 건전한 성장이 없다면 계속해서 넷플릭스에 끌려다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미디어 플랫폼은 ‘오징어 게임’ 의 성공 이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투자와 방송 규제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플랫폼 개혁을 말하는 이들은 정치적인 지형에서 숨쉬는 분들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유 지분 개혁(혹은 개악)도 필요하지만 한 발도 나가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