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영국 ‘공영 방송 민영화’ 주역 퇴장…1980년대 공영 방송 채널4의 앞날은
영국 리즈 트러스의 신임 총리, 문화부 장관에 '미첼 도닐런' 전 교육부 장관 임명. 전임 장관이 나딘 도리스가 BBC개혁과 채널4' 민영화를 적극 추진한 만큼, 새로운 총리와 문화부 장관이 펼칠 방송 정책에 모든 시선이 집중. 채널4는 민영화될 것인가.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에 이어 새로운 영국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문화부장관(Secretary of State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 DCMS)에 미첼 도닐런(Michelle Donelan)을 임명했습니다. 영국 문화부는 방송과 미디어 기업들에 대한 규제 정책과 인허가의 근간을 만드는 행정 조직입니다.
새롭게 문화부장관이 된 도닐런의 방송 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트러스의 내각 중 가장 젊은 장관 중 하나인 도닐런은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전 히스토리 채널(The History Channel)과 WWE(Worldwide Wrestling Entertainment) 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 입문 후 그녀의 주요 경력은 교육 분야였습니다.
[영국 공영 방송 개혁론자들의 퇴장]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 문화부 장관은 보리스 존슨 총리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소설가이자 유명 연예인 출신인 도리스는 존슨의 열열한 지지자지만 트러스 장관이 재신임한 만큼 차기 정부에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영국 방송 정책 개혁은 차기 총리에 넘겨주고 보궐선거 출마 등 다른 정치적 길을 모색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도닐런은 이전 교육부 장관(minister for higher education and secretary for education)으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에 항의하며 임명 후 36시간 만에 사임했습니다.
새로운 문화부 장관 임명에 따라 영국 방송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소설가이자 ITV의 인기 리얼리티 쇼 ‘I’m a Celebrity.. Get Me Out of Here!’ 출연자였던 나딘 도리스 전 장관은 2021년 9월 취임 이후 ‘상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publicly owned but funded by advertising)’ 채널4의 민영화를 밀어 붙인 바 있습니다.
또 BBC수신료(Licence Fee) 시스템을 개정, 향후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펀딩 모델(funding model)’을 폐지를 검토하는 등 휘발성 높은 공적 방송 서비스 개혁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특히, 채널4의 민영화는 영국 내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도리스 문화부 장관이 밀어붙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방송에 출연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도리스 전 장관은 파격적인 정책으로 영국 방송계의 미움을 사왔습니다. 심지어 채널4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도 이 채널이 정확히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는지도 몰라 논란이 일었습니다.
영국 문화계에서 DCMS의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영국 영화 산업, TV, 극장 산업, 스포츠, 음악, 관광, 인터넷 보안, 스포츠 등의 규제와 진흥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또 유럽 최대 이벤트 중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the Eurovision Song Contest), UEFA챔피언스 리그(UEFA Champions League) 등의 방송도 감독하고 있습니다.
[트러스 시대, “ BBC 개혁은 계속, 채널4는 미지수”]
결과적으로 리즈 시대, 영국 방송 규제 정책은 수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영 방송 정책은 보리스 존슨 시대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공영 방송에 대한 개혁은 공공성 및 공영성을 지키는 명제와 함께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80년 마가렛 대처가 만들어 놓은 영국 ‘공영 방송 만능론’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저널리즘의 확산으로 도전 받고 있습니다.
BBC의 수신료는 2년 동안 동결됐지만,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의 시장 침투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영국 의회의 기울어진 땅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책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는 예고편은 이미 있었습니다. 도닐런 신임 장관은 이전 ‘BBC가 75세 이상에 대한 수신료 감면 정책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 바 있습니다.(BBC가 연간 7억 4,500만 파운드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한 정책).
도닐런 장관은 신문 오피니언 면을 통해 “개인적으로 나는 BBC방송 TV수신료가 불공정한 세금(unfair ta )이며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다른 논쟁이다.”라고 기술했습니다.(Personally I think the licence fee is an unfair tax and should be scrapped all together but that is a different debate)
채널4 민영화에 대한 도닐런의 생각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선 트러스 총리가 채널4민영화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트러즈 총리가 2022년 8월 영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가능하다면 기업들은 공공부문보다는 민간부문에서 운영되는 것이 좋다”며 “채널4의 비즈니스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I will look in detail at the business case on Channel 4.)”
하지만, 민영화 속도는 다소 늦어질 수 있습니다. 영국 방송계 내부 반발이 생각보다 거셉니다.
자유민주당(the Liberal Democrat) 대변인 제이미 스톤(Jamie Stone)은 “이런 움직임(공영방송 민영화)에 대한 비즈니스 사례가 없다”며 “채널4를 매각하는 것이 영국 정부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고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강조했습니다.
또 스톤 의원은 “사실 민영화는 영국 창조 경제 일자리, 영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협해 우리 문화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앞서 2022년 9월 2일 영국 프로듀서 협단체인 PACT는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채널 4의 민영화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서한에는 채널4의 민영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700개가 넘는 영국 프로덕션도 서명했습니다.
팩트는 “현재 상황에서 채널4를 민영화할 경우 영국 독립 제작 분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마가렛 대처 전 총리가 만들어놓은 유산(소유는 정부가 재원은 상업적으로 조달)을 훼손시킬 것”이라며 민영화를 중단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프로덕션 중에는 ‘페파 피그(Peppa pig)’의 제작사 ‘엔터테인먼트 원(Entertainment One), ‘닥터 후(Doctor Who)’ 프로듀서 배드 울프(Bad Wolf) 등도 포함됐습니다.
PACT는 또 만약 채널4가 민영화될 경우 독립 영화와 TV분야에서 42억 파운드(6조 6.700억원)의 손실을 가지고 올 것으로 경고했습니다. 특히, 이 손실은 런던 등 수도권 이외 제작사에 집중돼 ‘영국 국가 균형발전’에도 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채널4의 제작의 55%는 런던이 아닌 영국 전역에서 만들어집니다. 채널4는 최근 본사를 런던에서 리즈(Leeds)로 이전한 바 있습니다.
공영 비영리법인(publicly owned not-for-profit corporation)이 소유하고 있는 채널4는 한국 공영방송인 MBC와 구조가 유사합니다. 지난 1982년 런칭했고 지상파 채널과 음악 라디오 채널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원은 공적 자금은 투자되지 않고 90% 이상 광고 상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입니다. 이 체제는 영국 대처 총리 시절 만들어졌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독립 외주 제작사들로부터 위탁 생산됩니다. 광고 매출은 공영방송 서비스 승인조건(public service remit)에 의해 다양한 오디언스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모두 쓰입니다. 채널4는 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런던 외 리즈, 브리스톨, 글래스고우에 창작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만약 채널4가 민영화된다면 영국 방송에 미치는 영향은 핵폭탄급입니다. 그래도 영국 정부가 밀어 붙인 이유는 스트리밍 시대, 공영 방송의 미래를 우려한 측면도 있습니다. (정치색을 빼고 보자면 그렇습니다.) 이전 나딘 장관은 스트리밍 시대 “‘공영이 소유하고 민영 재원으로 운영되는 형태의 공영 방송(privately-owned broadcaster)’”는 생존이 어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과거 채널4는 6번 정도의 민영화 시도가 있었고 그때마다 채널4 직원들과 지지자들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됐습니다. 이번에도 민영화에 실패한다면 7번의 ‘민영화 시도’가 좌절되는 셈입니다. 물론 한쪽은 실패라고 말하지만 다른 쪽은 방송 공영성 존중 및 유지라고 평가할 겁니다.
참고로 (팬데믹 영향으로) 채널4는 2022년 12억 파운드(1조 8,800억 원)의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흑자 규모는 1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지난 2021년 채널4의 매출은 11억 6,000만 파운드 정도였습니다.
영국 방송 전문가들은 채널4 매각 가격은 향후 부여될 승인 조건(Remit)에 따라 5억 파운드에서 15억 파운드까지 넓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강력한 인수 조건(독립 외주 유지, 저작권 양도 등)과 방송의 공공성을 승인 조건(public service Remit)으로 남겨놓을 경우 민영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재 채널4 인수에 관심을 가지는 사업자는 영국 ITV와 미국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 그룹, 아마존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도닐런 영국 문화부 장관은 공영방송(BBC와 채널4)뿐만 아니라 가스 등 에너지 위기도 해결해야 합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에너지 문제는 영국 문화 산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영향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라이브 이벤트(극장, 음악 공연 등)에게 치솟는 관리 비용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영국 영화와 TV산업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보험 지원이 다음달 끝날 예정이어서 많은 영국 콘텐츠 회사들의 도산 위험에 처했습니다.
영국도 방송과 정치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채널4민영화나 BBC 수신료 문제는 영국의 다음 총선(next general election)에서 매우 중요한 팩터(Factor)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영국 일각에서는 트러스가 조기 총선으로 가닥을 잡지 않는 한 문화 산업 개혁보다 2025년에 실시할 총선에 더 신경쓸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는 공영방송과 문화계의 목소리가 향후 2년간 더 거세질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DCMS 내부에서도 사실 도닐런의 공영방송 개혁에 대해 거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필리파 차일즈(Philippa Childs) 영국 공연자 노조 ‘Bectu’ 대표는 도닐런 임명을 축하하며 “영국 창조경제의 성공에 힘써달라.”며 “BBC나 채널4와 같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영방송을 손대는 대신, 독립 창작자와 프리랜서 등의 노동권을 위해 일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