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계란에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되는 이유/스트리밍 전성 시대 NBC ‘SNL’의 생존법
NBC유니버설, 미국 3위 스트리밍 훌루에서 콘텐츠 철수 논의 중. 그러나 자사의 스트리밍 피콕을 살리기 위해서지만, 어떤 것이 ‘둘 다 사는 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 시작. 훌루는 ‘SNL’ 없어도 살 수 있지만, SNL은 훌루 없인 도달율 현저히 떨어져. 싫지만 동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
(2021-12-07)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는 해외에선 유명하지 않습니다. 가입자가 4,300만 명이 넘지만 글로벌 진출 대신 미국 내에서만 서비스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훌루는 미국에서 독특한 위치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메이저 방송사들의 자신들만의 독자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축하는 지금도 주요 지상파 방송사(ABC, NBC, CBS)의 영화, 드라마 및 FOX, 워너미디어의 일부 프로그램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케이블TV 등 유료 방송 플랫폼에 가장 가까운 서비스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일부 훌루 오리지널 콘텐츠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은 훌루를 디즈니(지배적)와 컴캐스트가 100% 소유하고 있지만 원래 이 서비스는 지난 2007년 10월 뉴스 코퍼레이션(FOX), NBC유니버설(컴캐스트) 등의 조인트 벤처로 출발했습니다. 훌루의 처음 성격은 AOL, NBC유니버설, 페이스북, MSN, MYSPACE, 야후 등이 모여 공동 콘텐츠 배급 파트너사라는 개념이었습니다. 2007년 초대 사장인 제이슨 키라(현재 워너미디어 대표)가 취임했습니다.
2007년 7월에는 사모 펀드(Providence Equity Partners)가 10% 주주로 들어왔고 2009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도 훌루 컨소시엄에 주주로 합류했습니다. 디즈니는 훌루를 통해 ABC, ESPN, 디즈니채널 등의 콘텐츠를 유통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막강한 주주들이 만든 드라마, 영화들을 앞세워 훌루는 2000년 대 초반 승승 장구했습니다. 2010년 1월 컴스코어(Comscore)에 따르면 월간 비디오 스트리밍이 9억300만 번에 달해 유튜브에 이어 2위였습니다. 이후 2016년 9월 타임워너(현재 워너미디어, AT&T소유)가 사모펀드의 훌루 지분 10%를 인수했습니다.
이에 2010년대 훌루의 주주는 폭스, 디즈니, NBC, 워너미디어 등으로 할리우드 디지털 콘텐츠를 지배하게 됩니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지배하고 있는 웨이브(WAVVE)에 가깝습니다. )
그러나 본격적으로 권리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건, 2019년 3월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하면서부터입니다. 이 결정으로 디즈니는 훌루의 지분 60% 확보하게 됩니다. 다음달인 2019년 4월 워너미디어는 AT&T에 인수된 뒤 자신들의 스트리밍 서비스(HBO MAX)에 올인하기 위해 10% 지분을 회사에 다시 매각했습니다.
때문에 디즈니를 제외하면 NBC유니버설의 모회사 컴캐스트(Comcast)만 지분(33%)을 유지하게 됐는데 2019년 5월 양사는 오는 2024년 이 지분을 디즈니에 넘기기로 합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024년이면 100% 훌루는 디즈니의 자회사가 되는 셈입니다.
[NBCU, 훌루에서 스트리밍 독립 고민 고민 중]
오는 2024년 지분 완전 정리를 앞두고 NBC유니버설(컴캐스트)는 최근 훌루에서 콘텐츠를 완전 제외하는 것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콘텐츠 장벽을 치기 위해서입니다.
버라이어티(Variety)에 따르면 NBC유니버설은 2022년 초 훌루에서 빠질 수 있는 계약 옵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훌루에서 ‘더 보이스(The Voice)’나 ‘SNL(Saturday Night Live)’와 같은 콘텐츠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신규 제작 콘텐츠(2022년 가을 시즌)에 국한되며 합작사 시절 만들어졌던 오래된 시리즈는 이번에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NBCU는 훌루가 필요하지만, 훌루는 아니다.]
NBC유니버설이 훌루에서 빠지게 되면 일정 수준 타격이 불가피할 겁니다. 주요 미국 메이저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를 한번에 보기 위해 이 서비스를 가입한 고객이라면 이탈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버라이어티는 암페어의 자료를 인용해 훌루에서 NBC유니버설이 빠진다고 해서 큰 타격을 없을 것이라고 이례적인 분석을 했습니다. NBC를 제외한 다른 콘텐츠들로 훌루는 가입자들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리서치 회사인 암페어리서치(Ampere Analysis)는 2021년 10월 현재 NBCU이 훌루에서 제공되는 콘텐츠 중 9%를 배급하고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 숫자만을 보면 훌루가 NBC유니버설의 콘텐츠를 잃어도 큰 손해는 없어 보입니다.슬프지만, 오히려 NBC유니버설은 바이어컴CBS(11%)나 디즈니(24%)에 비해서도 한참 비중이 뒤집니다. 올림픽 중계사로서 현실이 비참합니다.
NBC유니버설의 개별 콘텐츠도 훌루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암페어는 여러 콘텐츠 평가 사이트(IMDb, Rotten Tomatoes, Metacritic) 등을 분석해 훌루 상위 500개 타이틀을 뽑았습니다. 지난 2021년 10월 기준 ‘사용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 받은’ 콘텐츠 순위입니다. 과학적인 분석을 위해 각 사이트의 수와 점수 등을 균등하게 평균을 내서 조사했습니다. 유명 사이트에서 나오는 분석은 더 비중 있게 반영했습니다.
암페어 분석 결과, 전체 상위 500개 콘텐츠 타이틀 중 8% 만이 NBC유니버설 드라마, 영화, 예능이었습니다. 공급 물량이 9%비중이었으니, 이 보다 못한 성적입니다.
경쟁사인 바이어컴CBS(11%)에 비해서도 뒤집니다. 특히, 바이어컴CBS와 디즈니는 공급 물량과 상위 500위 리스트에 포함된 물량이 동일했습니다. 이를 분석하면 비교적 균등한 퀄러티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낮은 인기는 NBC유니버설이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을 띄우기 훌루에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결정을 가속화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21년 3분기 이후 NBC유니버설은 피콕의 정확한 가입자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자랑할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하는 이유]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습니다. NBC유니버설은 입장은 다릅니다. WSJ에 분석에 따르면 NBC유니버설의 디지털 오디언스의 80%는 훌루를 통해 나옵니다. NBC유니버설이 꾸준한 인기를 몰고 있는 명작 드라마(30 Rock, Will & Grace, Law & Order: SVU) 등을 훌루에 남겨두기로 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훌루는 미국에서 3위 구독자를 가진 메이저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NBC유니버설이 훌루를 완전히 손절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까지 훌루의 지분 3분의 1을 보유한 상황에서 훌루의 성공도 모회사 컴캐스트에는 중요합니다. 이에 NBC유니버설의 훌루에서 완전 철수하는 대신, 콘텐츠 공급 간격을 조정(방송 후 1일에서 일주일 등)하는 등 피콕과의 공생을 추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게 나옵니다.
여기에서 스트리밍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모두 배울 것이 있습니다.
스트리밍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스트리밍 사업자’와 ‘콘텐츠 스튜디오’ 모두 하나의 서비스에 의존하면 안된다는 진리입니다.
전체 미디어 비즈니스가 스트리밍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이 변심할 경우 다른 진영은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월 디즈니가 소니(Sony)의 영화와 드라마를 최초 공개 형식으로 디즈니+와 훌루에 공급받기로 한 계약이 절묘한 묘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암페어 분석에 따르면 소니는 훌루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콘텐츠 중 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계약은 2026년까지인데 그 사이 시장은 많이 변할 겁니다.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않은 스튜디오인 소니는 넷플릭스와도 계약을 했습니다. 이 역시 하나의 스트리밍에 자신들이 운명을 맡기지 않은 결정입니다.
훌루와 NBC의 이슈는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들에게도 언제든 닥칠 문제입니다. 지금 손을 잡고 있는 상대방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업자만을 믿고 단독으로 생존할 수 있지 않다면 과감히 다른 서비스들의 손도 잡아야 합니다. K-OTT 혹은 K스트리밍을 만들라는 강요(?)는 희미해지고 있지만, 합종연횡에 대한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독점력이 유지되기 위해선 콘텐츠나 플랫폼 하나가 완전히 승리를 거둬야 하지만, 지금 미디어 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정보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