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한국 콘텐츠가 글로벌로 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 '자막의 완결성'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고 '오징어게임' 등 미국이 아닌 인터내셔널 제작 콘텐츠의 소비도 미국에서 늘고 있음. 과거 자막을 보기 힘들어했던 미국인들도 이제 자막에 익숙해졌고 오히려 원전의 분위기를 더 알기 위해 더빙보다 자막을 선호하고 있음. 이에 따라 현지 언어로 제작되는 작품도 나와 '자막의 중요성' 더욱 강조
미국 섬머타임이 끝나 시차 문제로 발송 시간이 조정됐습니다. 최대한 현장 분위기를 잘 반영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한국시간으로 오전 8시에 발송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11-08)
“사람들은 이제 기꺼이 그런 노력을 한다.(Viewers are now more willing to make the effort)”
애플 TV+는 지난 10월 지난 2017년 영화 ‘How to Be a Latin Lover’의 영향을 받은 오리지널 로맨틱 코미디 시리즈 ‘Acapulco’를 공개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아들을 둔 성공한 멕시코 사업가가 80년대 멕시코 유명 리조트(라스 콜리나스)에서 일하는 때를 회상하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특이할 것 없는 코미디 드라마이지만 눈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애플 TV+는 이 작품에서 창작적인 리스크에 도전합니다. 드라마 절반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만든 겁니다. 그렇다보니 미국 시청자들은 자막으로 이 드라마를 시청해야 합니다. 주인공은 친구와 직장에서는 영어를 쓰고 집에서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완전한 영어 더빙도 제공하지않습니다.
미국에선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The Squid Game), 애플 TV+ ‘테란(Tehran)’이나 이탈리아 범죄 드라마 ‘ZeroZeroZero’ 등과 같은 다국어 드라마(multilingual TV series)로 분류됩니다.
드라마 ‘아카폴코’에는 영어 사용이 소재로도 등장합니다. 칸쿤 호텔의 멕시코 직원들은 직장(적어도 상사와 있을 때)에서 영어로만 말하도록 강요당합니다. 스페인어 방송이지만 평가가 매우 좋습니다. 드라마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100점을 받았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이런 다국어 드라마 혹은 인터내셔널 드라마(Other international)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한 정설 혹은 편견으로 남았던 ‘미국인들은 자막(subtitles) 혹은 더빙(dubbed versions)’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가설이 깨지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미국인들은 영어 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자막으로 드라마를 보는 데 경험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벨라 바지리아(Bella Bajaria)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넷플릭스는 40개 국에서 콘텐츠를 수급 받고 지난해 미국 가입자들의 97%가 최소 한 편 이상의 비영어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버라이어티가 조사한 ‘국가별 영어 콘텐츠에 수요’를 보면 미국인들이 10명 중 8명은 영어 콘텐츠를 매우 자주 본다고 답했지만, 다른 영어권 국가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어권 국가 중에선 영어 이외 다양성을 갖춘 작품을 많이 보는 편에 속했습니다.
‘아카풀코’의 공동 창작자인 오스틴 윈스버그(Austin Winsberg), 에두아르도 시스네로스(Eduardo Cisneros), 제이슨 슈먼(Jason Shuman) 등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제작한 이유에 대해 “2개 국어를 구사해야 하는 인물들을 사실대로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또 “우리는 사람들이 언어 때문에 드라마를 보고 어색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였습니다.
참고로 애플 TV 제작진은 ‘아카풀코(Acapulco)’의 이중언어 시스템을 완전히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스토리 전개 상 스페인어로 말해야 한다면 스페인어로 만들고 가능한 많은 자막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막 시청, 몰입도는 높아져]
이중 언어 때문에 시나리오 작업이 늘었지만 몰입도는 높아졌습니다. ‘아카풀코’는 영어로 각본을 쓴 뒤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여러 번 거쳤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인 두 친구가 리조트에서는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둘이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탄생한 드라마는 ‘오리지널’의 느낌이 더 살았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멕시코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데 그들의 얼굴과 몸짓은 진실처럼 보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면서 다국어 프로젝트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 시즌2가 공개되는 애플 TV+의 오리지널 ‘테란(Tehran)’는 히브리어와 페르시아어 그리고 영어를 넘나듭니다. '테란'의 공동 제작자인 다나 이든(Dana Eden)은 3개 국어가 등장하는 만큼, 자막을 활용하는 것이 당연했다”며 “스트리밍 서비스에 제공되는 글로벌 작품으로 미국 시청자들이 자막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0년 방송된 아마존의 ‘제로제로제로(zerozerozero)는 8개 에피소드에서 7개 언어가 등장합니다. 또 훌루의 작품 ‘Only Murders in the Building’은 코믹한 강도로 나오는 주인공이 수화를 사용했을 때 자막에 의존합니다.
다른 나라 언어를 영어 자막으로 만드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드라마 ‘제로제로제로’의 수석 프로듀서인 지나 가르디니(Gina Gardini)는 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보다 드라마에 잘 빠져들 수 있도록 스페인과 이탈리아 언어가 영어 자막으로 나갈 때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원어를 그대로 반영했지만 거슬리는 표현은 해당 국가에 맞는 표현으로 바꿨습니다.
가르디니는 “자막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시청할 때 읽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화면을 보길 원하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다”며 “또 뉘앙스와 고유의 표현을 살리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넷플릭스 한국산 히트작 ‘오징어 게임’의 미국 자막도 원래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최근 ‘Why Are Netflix’s Subtitles So Bad’기사에서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어 자막의 중요성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고유의 표현들이 영어 자막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도 문제가 되는 자막 번역이 다수 있었습니다. ‘오빠(영어 표기 OPPA)’의 번역은 그냥 올드맨(Old man)과 베이브(babe)로 됐고 중년 유부녀를 지칭하는 아줌마(ajumma)는 그랜드마(grandma)로 지칭됐습니다. 이런 오역에 대한 비난은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인기가 높아질 수록 더욱 거세졌습니다.
[글로벌화를 위한 자막의 중요함 및 문제점]
자막의 정교함은 스트리밍 서비스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최근 미국산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로컬 언어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에 5억 달러 이상(6,000억 원) 투자하고 있고 디즈니+와 HBO MAX도 로컬 오리지널 편성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글로벌 콘텐츠 입장에서도 글로벌 오디언스들에게 완전히 이해되고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구독자가 가장 많은 북미 지역에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영어 자막은 선결 조건입니다.
그러나 번역 물량이 늘어나다 보니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번역료를 낮추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질적 하락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110분 영화를 번역하는데 평균 255달러(3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데드라인도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자막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합니다. 현재 자막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자막 길이나 배우들의 말하는 오디오와 맞춰야 하는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화면 연기를 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미권에선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 아시아의 복잡한 가족 관계 호칭에 대한 번역을 어려워합니다. 연장자와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 어머니 형제와 아버지 형제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영미권에선 가족 관계 호칭이 매우 단순해 바로 번역되기 어렵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 만큼 자막 작업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진출을 위해선 해당 국가의 오디언스를 최대한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 번역 작업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자막 번역은 한국에 거주하는 영화 평론가 달시 파켓(Darcy Paquet)이 맡았는데 번역 하는 도중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로부터 문서를 통해 정확한 대사와 뉘앙스의 의미를 전달 받았습니다.
이런 교감을 통해 번역의 오류를 최대한 걸러냈고 배우의 대사를 감독의 의도에 맞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정도의 자세함은 스트리밍 서비스로선 사치일 수 있습니다. 1년에도 엄청난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번역 마감 시간도 보통 1주일입니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사람을 키우고 전문가를 길러야 합니다. 지난 2018년 넷플릭스는 글로벌 에르메스 플랫폼(global Hermes platform)을 폐쇄했습니다. 2017년 자막과 음성 번역가를 육성하기 위한 조직이었습니다.
만약 한국이 더 많은 글로벌 콘텐츠를 바란다면 이 부분에 크게 투자해야 합니다. 사업자들이 연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입니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도 이 지점입니다.